* <아주 긴 변명>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인생에 권태기가 찾아왔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무기력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온다. 삶의 이유였던 것을 놓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작가 사치오(모토키 마사히로)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머리를 다듬어주는 아내 나츠코(후카츠 에리)에게 괜히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툴툴거리고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 순간이었다. 여행을 떠난 아내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글이 써지지 않던 사치오는 같이 여행을 떠났던 유키(호리우치 케이코)의 남편 요이치(타케하라 피스톨)에게 연락을 한다. 독선적이고 괴팍한 사치오는 선뜻 요이치 대신 아이들을 봐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이후로 글 쓰는 일을 제쳐두고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낸다. 마치 사치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처럼 열심히 한다. 아이들 돌보기가 사치오의 삶의 이유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사치오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아 변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감독은 달라진 것만 같았던 그를 가차 없이 흔든다. 아내가 떠나던 순간에 사치오는 자신의 애인과 함께 밤을 보냈었다. 그로 인해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의 휴대폰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게 된다. 그 메시지를 본 순간 사치오는 무너져 내린다. 죄책감을 마음 한 구석에 두고 열심히 살았던 그에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의 의미가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또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떠나보낸 요이치가 새로운 사랑 상대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흔들린다. 자신이 더 이상 아이들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돼버린 것처럼 느껴진 사치오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찾아가지 않는다. 삶의 이유를 또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지방에서 사고를 당한 요이치로 인해 아이들에게 다시 찾아간다. 신페이와 함께 요이치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사치오는 데려다만 주고 기차를 타고 돌아온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아이들이 아닌 소설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돌아와 소설을 쓰고 발표했다. 발표회에 요이치와 아이들을 초대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사치오는 그 거리가 자신에게 적당한 거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것이 자신의 일상이었지만 권태로움으로 잠시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잡았던 것이다.
아내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이 사치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사치오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꾸지는 못했다. 버티기 위해 삶의 이유를 찾아가던 그는 서서히 변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내를 떠나보내고 하루하루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죄책감을 가졌던 아내에게 할 수 있었던 아주 긴 변명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