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시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모여 살며 공동의 이익, 재산, 소유, 자원을 공유하는 공동체’
바로 영화의 원제인 <더 코뮌>(The Commune)의 정의다. 대부분의 코뮌은 경제뿐 아니라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 위계 없는 사회구조, 환경 친화적인 삶을 원칙으로 한다. 영화 속 안나의 제안으로 시작된 공동체는 ‘함께 살면 행복할 거야’라는 모토 아래 시작됐다.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모두 평등한 존재로 안건이 생기면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한다. 빌라스의 첫 졸도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공동체의 존재는 긍정적인 측면이 컸다. 병원에 실려 간 빌라스의 상태를 물었을 때 직계가족이 아니란 이유로 거부당하자 구성원들은 진심으로 화를 낸다. 그만큼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생활은 모토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장 먼저 나타난 위기는 경제적인 문제였다. 공동체에 새로 합류한 알론은 생활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다. 올레도 경제적 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안나와 에릭이 주로 생활비를 부담하는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 이런 상황에서 에릭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구성원들에게 억지를 부린다. 위계 없는 사회구조를 전제했지만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서 재정적인 부분을 무기로 내세운다. 서로 다른 정도의 재산 소유가 불평등한 구조를 만든 순간이었다.
다른 위기는 의사결정 문제였다. 처음에는 안건에 대해 투표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이루어냈다. 그렇지만 안나의 거취 문제는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적인 문제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일지라도 안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그들은 안나의 거취에 관해 투표의 필요성을 느꼈다. 공동체의 일원인 만큼 다른 구성원들의 의견이 중요한 것은 맞다. 그렇지만 실제로 결정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의견을 말하기 난감하다는 이유로 발언을 거부했다. 딸 프레아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녀는 안나에게 떠나길 권했다. 결국 안나는 공동체를 떠났다. 공동의 문제를 공동이 고민하고 해결한다는 원칙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공동체라는 형태가 이상적이라 해도 구성원들이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그 기저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 불화라는 것이 생길 틈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양보와 배려가 익숙해진 그들은 자신이 불리한 순간 공동체를 방패막이로 이용한다. 수입이 없는 알론은 경제적인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장난스럽게 우는 척을 하며 어물쩍 넘어간다. 에릭은 안나와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그 책임을 공동체에게 떠넘긴다. 자신은 바쁘니 공동체에서 알아서 하라고 오히려 화를 낸다. 공동체는 개인들의 문제를 힘을 모아 좀 더 긍정적으로 해결해보고자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문제만 떠넘기고 해결을 같이 하지 않으려 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영화에 등장하는 공동체 형태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표하거나 발언해야 할 때 회피하거나 침묵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회피와 침묵은 사회가 가진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또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모른 척한다. 자신이 안 하면 누군가는 하겠지 하고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떤 부분을 봐도 이러한 측면이 항상 존재한다.
인간의 이기심을 부정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럼에도 혼자 살려고 하지 않는다. 이기심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상처를 받을지라도 사회를, 공동체를, 가족을 이루어 산다. 최근에는 코하우징, 셰어하우스와 같은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을 전제로 하고 합의와 규칙을 통해 끊임없이 좀 더 함께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사회 속에서 이탈자는 언제나 있어왔고 그 어떠한 합의와 규칙을 만들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좀 더 나은 길을 찾을 뿐이다. 어쩌면 영화 속 공동체도 막연한 모토와 간단한 규칙보다 좀 더 깊은 논의를 통해 분명하고 명확한 합의와 규칙을 만들어 시작했다면 안나를 포용했거나 이별을 하더라도 좀 덜 아프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혁명 이후 고도로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사랑의 시대’였고 지금은 ‘냉정하고 각박한 시대’라고 한다. 영화 속에서 빌라스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사랑의 시대로 갔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랑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 하는 노력이 또 다른 사랑의 시대의 시작이 되고 있다. ‘사랑의 시대’는 지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현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