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헝거> 신념은 변할 수 없는가?

by 찬란한 하루

영화 <헝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movie_image.jpg 영화 <헝거> 공식 포스터

‘신념’의 사전적 의미는 굳게 믿는 마음이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믿는지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은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무엇’과 ‘어떻게’가 정해진다고 해도 타인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본인 자신에게 신념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것이 옳은 것이어야 한다. 자신이 굳게 믿기 위해선 옳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념은 그 사람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뿌리가 단단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영화 <헝거>는 교도관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교도관은 무표정하게 재소자를 때린 주먹에 묻은 피를 닦는다. 교도소에서 따라야 하는 원칙을 따르지 않는 재소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모멸감을 준다.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는 재소자들을 알몸으로 끌어내 폭행하기도 한다. 교도관은 철저히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원칙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다 재소자들을 폭행해야 하는 때는 끝내 무너지는 교도관의 모습들이 보인다.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movie_image (4).jpg 교도관의 모습. 영화 <헝거> 공식 스틸컷

교도관들은 원칙대로 행동할 뿐 자신의 행동에 옳다는 확신과 믿음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항군 재소자에게 극도의 폭력을 가하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울고 괴로워하는 교도관의 모습까지 보인다. 교도관들에게는 신념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신념이 없기에 자기가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후회하는 것이다.


교도관의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재소자의 관점으로 넘어간다. 영화 속 재소자들은 IRA 조직원들이다. 이들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아일랜드 저항군이다. 교도소 안에서 죄수복 착용을 거부해서 알몸으로 지내고 샤워를 거부하고 노폐물을 이용해 저항한다. 교도관들은 이들을 끌고 가 폭행을 해서라도 샤워를 시키고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심지어 보비 샌즈는 단식투쟁까지 이어간다. 자신의 몸이 다 망가져가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설사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해도 망설이지 않는다.

movie_image (2).jpg 단식투쟁하는 보비 샌즈. 영화 <헝거>

저항군 재소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단식으로 끝내 죽음을 맞으면서도 후회하거나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저항군 재소자들은 신념이 있다. 심지어 신념이 강한 상태인 것이다. 신념이 강하기에 자신이 한 행동에 후회가 없으며 끝까지 밀고 나간다.


영화 <헝거>는 신념이 없는 상태의 사람들과 신념이 있는 상태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코 옳고 그름의 입장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신념은 개인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만 보여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의 대상을 찾는다. 사고 과정을 통해 그 대상이 옳다는 확신이 서면 그때부터 그 대상은 신념이 된다. 그 과정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확신이 선 때 만들어진 만큼 한 번 만들어지면 변하기 쉽지 않다. 그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도 그 결정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 자신의 판단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신념을 포기할 줄 아는 것마저도 신념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던 대상이 더 이상 옳지 않다고 생각이 되면 굳게 믿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대상을 포기하고 새로 옳다고 믿는 대상을 굳게 믿어야 한다. 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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