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리 정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순수한 것'과 '순수하지 않은 것'의 대비를 끊임없이 보여주며 진행된다. '순수하다'는 사전적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다.'의 의미가 있다. 이를 대표하는 공간이 바로 숲이다. 숲과 대비되는 공간인 도시는 공사하는 소리, 사람들의 소리 등 여러 소리가 시끄럽게 섞여있다. 반면 숲은 동물들의 소리, 바람의 소리 등 여러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또한 '사사로운 마음이나 욕심이 없다.'의 의미가 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나무에서 태어났던 재연(문근영)과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지훈(김태훈)이다. 재연은 사사로운 마음 없이 자신이 만든 녹혈구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지훈은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보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반면 도시에 있는 재연과 지훈의 주변 인물들은 개인의 이익을 좇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었다.
재연은 자신이 숲에 있는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자연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순수하게 자랐던 재연은 도시로 오게 된다. 순수한 그녀는 녹혈구를 개발하면서 자신이 사람들을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학교에서 처음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던 자신에게 걸음을 맞춰준 정교수(서태화)를 사랑하게 된다. 순수한 그녀는 정교수에게 잘 보이려 안 입던 옷까지 입는다. 그렇지만 도시라는 공간과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서서히 오염시킨다. 재연은 자신의 동료인 수희(박지수)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했던 정교수는 수희에게 마음을 돌린다. 심지어 수희와 함께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한다. 배신감을 느꼈지만 순수했던 그녀는 결국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숲으로 돌아간다.
이미 도시에서 지내며 오염된 그녀는 숲으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순수했던 재연이 아니다. 순수하게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 점점 자신이 모든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광기 어린 믿음으로 변한다. 사사로운 마음을 가지고 숲에 찾아왔던 정교수는 물에 빠져 죽는다. 재연은 자신이 한 때 순수하게 사랑했던 사람이었기에 정교수를 데리고 와 자신이 개발한 녹혈구를 주입한다. 그러면서 정교수가 다시 살아날 거라 믿는다. 시체에 곰팡이가 피고 있는 걸 보면서도 살아나는 과정이라고 착각한다. 결국 그녀는 경찰에 체포된다. 원래 돌아갈 수 없는 순수함은 더럽혀진 채로 그녀를 철저히 망가뜨렸던 것이다.
지훈은 순수한 문학도였다. 나이가 42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작품을 쓰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좋은 작품을 쓸거라 믿었다. 그런 그에게 성공한 작가인 이창대(김세동)는 순수하지 못한 존재였다. 지훈은 다른 사람들의 창작물을 표절하는 이창대는 진정한 문학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훈은 술을 마시다 이창대에게 시비를 걸게 되고, 그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면서 타격을 입는다. 순수함을 버리지 않고는 인정받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은 지훈을 서서히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는 재연이 벽에 그린 그림을 보게 되고 순수해 보인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지훈은 이미 오랜 기간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순수함을 잃은 채로 숲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재연을 만나게 되고 순수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난 후 따라다닌다. 그러다 그는 그녀 몰래 그녀의 정원에서 일기를 훔쳐온다. 일기를 읽으며 자신이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여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연재한다. 그 소설은 도시에 있는 순수하지 못한 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는다. 지훈은 그토록 원하던 사람들의 호응을 얻게 되면서 그 호응에 도취된다. 그렇지만 그 소설은 그의 창작물이 아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재연의 순수함이 파괴되며 광기 어린 모습을 보고 지훈은 충격을 받는다. 결국 그의 소설은 창작물이 아니란 사실에 질타를 받고 그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그 역시 돌아갈 수 없는 순수함이 그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영화 속에서 순수함으로 가득 찬 공간인 숲은 순수했던 사람은 포용했다. 그렇지만 순수하지 못하거나 순수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숲에서 철저히 망가졌다. 인간은 문명을 접하면서 순수함을 잃어간다. 사사로운 마음과 욕심이 생기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감정들이 인간 안에서 뒤섞인다. 그렇게 변한 후에는 다시 순수했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결국 문명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이 인간 스스로 많은 것을 놓치고 살게 하며 망가뜨리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