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질문의 답을 인간이 아닌 강아지에게서 찾는다.
"지금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단순하고 간단한 대답을 여러 번 태어나는 강아지를 통해 전한다.
누구나 한 번쯤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실 그건 정답이 아니라 소망이다. 이미 태어난 상황에서 우리는 기왕이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 고통스럽고 슬픈 순간보다는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는 게 우리의 소망이다.
그렇지만 소망이라는 단어를 붙였듯 우리는 대부분 지금 행복하고 즐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실천하고 벗어났을 때는 다시 돌아가게끔 스스로를 바로 잡는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는 늘 '난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외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게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고등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생각 때문에 우리는 행복과 멀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언제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찾는 것보다는 지금 어떻게 하면 행복하지를 찾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주말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따뜻한 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는 게 행복이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옛날 일을 떠올리며 깔깔 웃는 게 행복이고,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고 웃는 게 행복이다.
베일리는 3명의 주인을 만나 다른 삶을 살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거창한 행복보다는 사소한 행복이 쌓여가면서 나의 삶을 만들고 그 사소한 행복들을 느끼고 찾는 게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베일리를 보며 때로는 찡하고 때로는 웃음이 났다.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고 사소한 순간에 행복을 한 번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