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는 엄마, 아빠 중 한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면 누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영주(김향기)는 영인(탕준상)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그리고 답이 없자 자신은 아빠가 유럽여행을 보내주기로 했다면 아빠가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슬픈 대답이면서도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래도 넌 누나가 있어서 다행이지? 누나가 너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그리고 너 대학도 보내줄 거야.”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영인에게 영주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사랑이 필요한 말이다. 부모가 버팀목으로 있어야 할 나이인 14살 이후부터 동생을 품고 살아온 영주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말은 안 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것이다. 동생을 부모 대신 품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애써 버티는 영주에게 동생의 사고는 큰 시련이 된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사기까지 당하게 된다. 그렇지만 자신 주위에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더욱 절망한다. 결국 영주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들에게 찾아간다. 처음에는 증오심이었을 거다.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사람들. 나의 부모를 죽인 사람들. 나는 이렇게 힘들게 버티면서 살고 있는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면 복수하고 싶다. 당장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영주는 증오심으로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한강 다리에서 한강을 들여다보지 않고 건넌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과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은 너무 좋은 사람이다. 나의 부모를 대신해서 나에게 사랑을 주고 보살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영주 본인이 사고를 쳐도 뭐든지 괜찮다고 말하고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람들 같다. 그렇기에 영주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 품었던 증오심은 점점 사라지고 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영주는 점점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상문이 차 사고로 죽인 사람들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될까 봐.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을 밀어낼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가능한 오래 숨기려고 한다. 그렇지만 영인이 사실을 알게 되고 상문과 향숙과는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말로는 안다고 하지만 영주는 지금의 관계가 깨지는 게 두렵다. 그래서 영인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상문과 향숙이 자신에게는 지금 부모보다 더 필요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사실 영주의 마음 한 편에는 이 두려움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영주는 용기를 내서 사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상문과 향숙은 영주를 밀어낸다. 그들을 보고 난 후 영주는 한강 다리 앞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한다. 증오심과 두려움으로 겨우 버텨왔던 영주는 원동력을 잃었다. 그렇기에 한강 다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운다.
사람들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증오심과 두려움이 사람의 원동력이 될 때가 있다. 물론 그 감정들이 원동력이 되는 이유는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상문과 향숙에게 실망한 영주가 다시 증오심을 가지고 살아갈까 봐 그게 두렵다. 부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사랑으로 살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