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북>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그린북>이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흑인 남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당시 사회상에 대해 상상하며 안타까워한다.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사회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았는지.
그렇지만 이 영화 속 역사적 사실은 객관적 지식이 아니며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상황 이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황 속에 감춰진 의미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주의하여 영화 <그린북>을 낯설게 읽어보고자 하였다.
이 영화는 음악가인 흑인 남성과 그의 운전기사인 백인 남성이 남부 투어를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사회 속에서 이들의 관계는 마치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 흑인 남성인 셜리가 위험에 쳐했을 때 도움을 주는 건 백인 남성인 토니다. 물론 유치장에 갇혔을 때 셜리가 가지고 있는 인맥을 이용해 위험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결국 모든 극적인 상황에서 키를 쥐고 있는 건 토니다. 즉 셜리가 부와 명예는 더 많이 가졌을지는 모르겠지만 흑인인 그는 백인의 도움 없이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이 영화는 인종차별을 소재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밝은 톤으로 진행된다. 물론 좀 더 밝고 유쾌하게 인종차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렸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큰 고통이었던 상황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보여주기보다는 가볍게 보여줌으로써 심각성은 떨어지고 사람들이 웃는 사이에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이 어느 정도 비약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흑인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서 가볍게 표현되는 건 어느 정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셜리와 토니의 우정은 아름다워 보인다. 인종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있음에도 개인들은 정서적 유대를 통해 이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우정이 진정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흑인과 어울리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으면 받았을 거지 토니의 행동이 옳고 바람직하다고 손뼉 쳐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사회적 편견은 깨기가 어렵다.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항상 엄숙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회자될수록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약자의 고통을 좀 더 헤아리고 약자들 스스로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더 보여줄 수 있는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