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by 찬란한 하루

영화 <우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상 포스터3.jpg 영화 <우상> 공식 포스터.


우리에게 ‘신처럼 숭배되는 물건이나 사람’이라는 의미의 단어는 ‘우상’보다는 영어인 ’IDOL’이 더 익숙해져 버렸다. 20세기 말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그룹들은 수많은 10-20대 팬을 거느리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수많은 팬들을 웃고 울게 했다. 이처럼 우상을 갖게 되면 우리는 그 대상을 탐닉한다. 그리고 탐닉을 넘어 그 대상을 나와 동일시하며 그에 의해 내가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 밀어내고 부정한다.


우상3.jpg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는 구명회. 영화 <우상> 공식 스틸컷.


영화 <우상>에서 유력한 차기 도지사 후보인 ‘구명회’(한석규)는 사람들에게 우상 같은 존재다. 의사 출신 정치인인 그는 스스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오가면서까지 원전 폐쇄를 위해 힘쓴다. 대중들이 보기에 그는 둘도 없는 훌륭한 사람이다. 의술로 사람들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를 통해 원전과 같은 기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냈다는 걸 밝히며 위기를 겪었음에도 지지율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상승한다. 즉 구명회를 우상으로 인식한 사람들은 구명회가 가진 진실보다는 그의 이미지를 더 보려 한 것이다.


다시 20세기 말부터 등장한 가수 그룹들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우상과 같은 그들의 존재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혹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우리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들을 우상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저 가수들의 매력이 뭐기에 팬들은 저렇게 죽고 못 사는지. 심지어 팬이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저 가수들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웃으며 의문을 가진다. 빠져있을 때는 모르지만 떨어져서 보면 달라 보이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우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돌아서는 순간 그들의 마음은 완전히 싸늘하게 식는다. 영화 <우상>에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 머리를 떨어뜨리는 ‘유중식’(설경구)의 행동으로 인해 구명회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는 한순간에 끝났고 그는 정치인이 아닌 종교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상.jpg 구명회를 바라보는 유중식. 영화 <우상> 공식 스틸컷.


그렇지만 우상이 된 존재는 자신이 누리던 것들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한창 10-20대 팬들을 거느리던 가수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가 사라지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도 자신이 정점에 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자신이 늘 그 위치에 있기를 원하며 때로는 그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우상이 되어간다고 믿던 구명회는 아들의 뺑소니 사고를 덮고, ‘련화’(천우희)를 납치하고, 심부름센터 직원을 죽이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희생된 아들의 아버지인 유중식에게 자신을 도지사 후보로 지지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우상으로서 자리를 잡나 싶었지만 련화와 유중식에 의해 구명회의 꿈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국에서 종교인으로 설파를 하며 우상이 되려 한다. 결국 구명회는 우상이 되어 누린 것들을 놓지 못한 것이다.


우상 포스터.jpg 영화 <우상> 공식 포스터.

영화 <우상>을 보며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다. 힘을 가지고 있던 엄석대가 선생님의 방관 하에 누리고 있던 권력이 병태에 의해 서서히 틈이 벌어지고 무너지게 되면서 반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물론 영화 <우상>에선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이용해 권력을 가지게 된 구명회가 주변 의원들의 비호로 승승장구하던 과정에 유중식과 련화가 틈을 만들지만 통쾌하게 그의 위선과 죄를 드러내고 무너뜨리는 건 아니었다. 유중식과 련화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다루어주는 것도 좋지만 제목이 우상인 만큼 구명회를 보며 이들이 겪는 감정의 변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춰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상이 주는 빛과 그림자에 주목했으면 더 주목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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