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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훈 May 02. 2023

깨달음의 즐거움

『놀이터는 24시』 중 「수요 곡선의 수호자, 배명훈」을 읽고서.


‘수요 곡선의 수호자’ 이 이름을 처음 읽었을 때 내 생각은 수요 곡선? 수요일의 곡선? 그게 뭔데 수호를 하지? 하는 식으로 뻗어나갔다. 수요 곡선과 수호자, 익히 알고 있는 두 단어는 전에 본 적 없던 조합으로 붙어있어 수요 곡선이 당연히 내가 알고 있는 그것일 거란 생각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유희가 마사로를 만나 그의 역할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음을 얻어 진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소설은 유희의 깨달음과 함께 시작된다. 그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 유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리에게 소상히 알려주진 않지만, 유희의 깨달음은 인물을 어딘가 신비롭게, 궁금하게 만들며, 유희를 아주 뛰어난 ‘생산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미 이 소설의 주제가 즐거움이라는 정보를 인지하고 읽기 시작한 나는 ‘깨닫는 순간의 즐거움’을 나타낸 글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글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유희는 깨달음의 순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잡무를 대신해 줄 로봇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만난 마사로는 다른 로봇과는 어딘가 달랐다. 로봇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생산자’를 돕는 행위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희의 방을 어지럽혀 깨달음의 생산을 멈추게 한다. 넌 대체 어떤 일을 하냐는 유희의 질문에 마사로는 답한다.


“소비자거든.”
“무슨 소비자?”
“뭐든.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로봇이야. 수요 곡선의 수호자지. 공급 곡선에는 참여하지 않아. 펑펑 쓰고 원 없이 써. 사람이 만든 건 뭐든지 살 수 있어. 그러려고 만든 시험용 로봇이야. 성공한 시험용 로봇. 멋지지?”

 - 수요 곡선의 수호자 중


드디어 수요 곡선과 수호자의 진실에 도달한 나는 깨닫는 순간의 즐거움을 느끼며, 소비를 하는 로봇을 생각해 낸 작가의 발상에 감탄했다.


로봇, 인공지능은 일반적으로 생산자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다. 스마트 팩토리, 서빙용 로봇, AI 비서, 챗 GPT까지. 인간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산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자신의 생산을 도울 로봇을 만든다. 그렇게 생산자를 돕는 방향으로 끝없이 발전하는 로봇은 결국 인간의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모두 빼앗아 버리고 말 것이다. 그날이 온다면 인간은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것은 ‘기본소득’ 일 것이다. 로봇에게 모든 생산을 맡기고, 인간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가지고 생활한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이는 어쩌면 유토피아적인 세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저 놀고먹기만 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니,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의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 이면엔 디스토피아 가 함께 숨어있다. 로봇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


작가는 이에 대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소비 로봇 마사로. 마사로는 오로지 소비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것이기에. 자신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품지 않고, 오로지 소비를 한다.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당연히 인간의 전유물이라 생각해 왔던 ‘소비’를 하는 로봇, 마사로의 존재에 흥미를 느낀 유희는 마사로가 어떤 일들을 겪어왔는지 묻는다. 마사로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 그리고 진정한 소비를 하기 위해 발전해 나간 과정. 즉, 로봇이 인간다워질 수 있던 과정을 들으며 유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깨달음의 순간을 얻고자 한다.


나에게 있어 이 소설의 주제는 깨달음의 즐거움이었다.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발견한 너무나 단순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찾아본 작가의 인터뷰 속 작가가 생각하는 즐거움은 ‘몰입’이라고 했다. 그 인터뷰를 읽고 나니 내가 너무 단순하게 읽었던 것은 아닌지 하며 다시 한번 소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단순히 나만의 생각으로 정해놓았던 주제가 아닌 다른 주제를 생각하며 다시 읽어본 소설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읽는 재미가 달라지다니!


“역시 깨닫는 건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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