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북> 리뷰
그린북, 평화로운 여행을 위한 안내서. 그 길에 토니와 셜리가 함께 투어를 떠난다. 극 중에서 트리오 단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돈도, 대접도 못 받는 남부투어를 셜리는 왜 자청해서 가려고 하겠느냐고. 영화에서 그 물음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관객은 이때 생각해볼 수 있다. 뉴욕에서 돈도 대접도 더 받으며 카네기 홀 꼭대기에서 살고 있는 셜리가 왜 남부로 떠나려하는지. 그리고 나는 질문한다. 남부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영화 속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는가.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영화가 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툭툭 던진다. 토니와 셜리가 함께 일하기로 한 뒤 투어 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하는 그들의 대화와 제스쳐가 대표적이다. 영화 속에서 토니를 통해 관객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과 재즈 음악은 흑인의 대표적인 취향으로 인식하게 된다. 흑인들이 좋아할법한 음식과 음악을 셜리가 잘 알지 못하니 토니는 셜리에게 ‘당신네 사람들이잖아요’라고 말한다. 이때 셜리는 '토니가 말하는' 흑인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설명해야하는 입장에 처한다. 반대로 토니는 누구에게도 그런 질문을 듣지 않는다. 당연히 해명해야할 일도 주먹으로 해결해버리면 그만이다. 토니는 떠버리라는 별칭대로 계속해 발화할 수 있으며, 담배연기처럼 순간의 감정을 발산하는 것이 자신의 타고난 성향임을 내세우며 당연한 듯 행동한다. 거침없어 보이는 토니의 말과 행동에는 단지 그의 천성만을 엿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가 처한 환경도 생각하게 된다. 1960년대 미국, 백인이면서 이태리계 미국인, 존재 자체로도 인간일 수 있는 사람. 한편 그 당시 같은 1962년 미국에 사는 셜리는 누군가가 되어야만 인간으로 잠시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클래식 피아노를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셜리만이 다른 (백인)인간들에게 잠시나마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말과 생각을 속으로 삼키는 데에 익숙하다. 늘 외양과 언변에 신중을 기하고, 품위를 지키려 애쓴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든 토니는 토니 개인의 것으로 여겨지지만, 셜리의 모든 것은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흑인의 전반으로 치부되었다. 덩어리로 취급되고, 항상 설명하고 감내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사회적 약자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당시 흑인들이 받는 차별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에서 언급되었듯, ‘흑인인데도 여행을 해야 한다면’ 그린북을 통해 여행을 하게 된다. 집과 같이 편안하고 아늑하다고 소개되었지만 정작 싸구려 숙소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흑인 전용 화장실을 써야하며, 여행지에서 만나는 다른 흑인들은 대개 백인 호스트의 하인이거나 밭을 매는 노동자들이다. 셜리는 백인답지도 흑인답지도 남자답지도 않다고 말하며 억눌렀던 자신의 감정을 토니에게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다른 흑인들을 보는 셜리와 셜리를 쳐다보는 다른 흑인들의 시선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건 그 이유에서다. 셜리가 남부로 내려가 흑인으로서 백인 앞에서 고상하고 우아하게 품위를 유지하는 동안, 당시 대다수의 흑인들은 조롱과 멸시, 천대받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외에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더 나은 자본을 갖지 못하면 흑인은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존재자체가 인간일 수 있는 백인과의 차이를 토니와 셜리를 통해 영화는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들의 우정을 중심으로 영화의 서사를 풀어낸다. 둘은 남부 투어를 모두 마치고, 성탄절을 맞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토니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셜리는 혼자 사는 집으로 간다. 마지막에 셜리는 토니를 찾아가고, 용기 내 문을 두드린다. 환대받는 듯 보이는 토니의 집 안으로 셜리가 들어간다.
‘eyes on the road.’ 토니가 계속 허풍과 헛소리를 뱉으며 가야할 길 앞에 운전대를 제대로 잡지 않을 때 셜리는 이렇게 말한다. ‘eyes one the road. 정면을 보라고요.’ 토니의 친구들과 가족들은 흑인들의 뒷담을 할 때에 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태리어를 남발하며 조롱을 일삼는다. 셜리 트리오의 공연을 보러 온 백인들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셜리를 귀빈 대접하다가, 무대를 내려온 셜리에게 애써 모욕을 감추지 않는다. 유쾌하고 감동적인 외면과 서사 뒤에 끔찍하게 억눌리고 몸서리 쳐온 인종 차별의 역사가 내포해 있는 영화. 노골적으로 시대의 인종차별을 드러내는 대신 두 사람의 인간적인 이해와 공감을 토대로 우정을 말하는 영화. 평화를 위해 잃지 말아야 하는 품위는 영화 안에도, 밖에도, 존재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