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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Mar 06. 2019

영화를 그저 '영화'로 본다면,

『감정과 욕망의 시간: 영화를 살다』, 남다은






최근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면서 

잠시 멈춰서 고민하는 지점이 크게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영화를 비롯해 누군가가 애써 만든 결과물을 어떤 잣대로 비판하는 태도에 대해서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비판적 태도로 보게 되면서 느끼는 무심하고 게으른 영화에 대한 생각이다.



일련의 생각들을 정리하다가, 남다은 영화평론가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쓴 영화평론집을 읽게 되었다. 남다은은 책 『감정과 욕망의 시간: 영화를 살다』 을 통해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태도와 출간 무렵까지의 한국영화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을 드러낸다.

"달리 말해 같은 소재에서 출발했으나 서로 다른 이야기들로 만들어주는 구체적인 결들, 쉽게 말하자면 그 영화만의 눈, 현실에 대한 해석, 멈추고 바라보는 시선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소재가 있고, 그 소재가 야기하는 유사한 사건이 있고, 사건이 작동하는 유사한 틀이 있는데, 그 틀이 가동되는 순간, 자동 기계처럼 흐르게 내버려두는 영화들을 보며 저는 과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대체 누구의 이야기인가,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상 속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사람들



'자동 기계처럼 흐르게 내버려두는' 것은 소재와 이야기 전개에만 한정되지 않고, 영화의 윤리적 태도에 이어지기도 한다. 남다은은 영화가 주는 '폭력성'에 대한 사유도 들여다보게 한다.

"가해자의 맥락 없는 가학이 있어야 희생자, 피해자의 고통과 불안이 극대화되고, 그 고통과 불안이 참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해야 죽음이든 복수든 더 약한 타자에 대한 착취든 사건의 폭력이나 분노의 폭발로 분출할 수 있게 된다는, 어딘지 거꾸로 굴러가는 도식이 영화들을 지탱하는 것 같았습니다. 숏, 신, 나아가 전체 이야기는 이 도식에 근거해서 필연성을 획득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 영화의 모든 요소들이 저 분노의 현현을 위해 복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화 속 조악한 도식 안에서 존립 근거를 부여받는 저 분노의 실체는 실은 영화 안에서 설명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 분노의 덩어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저 장르적 욕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비판적 태도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따져 가며' 공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내심 꺼려한 적도 있었다. 그 생각의 기저에는 '영화는 지지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쉬기 위해 보는 오락', '시간 때우기용의 재밌게 웃고 끝나면 그만인 영화'라는 태도가 깔려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분석해서 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모두가 비판적 태도로 영화를 볼 필요도 물론 없다. 다만 나는 더 이상 내게 주어진 영화가 단지 '몰입감 쩐다'는 이유로 재밌지 않아 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충분했지만 이제는 그 정도로는 만족스럽지 않아 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반복해 볼 때면 이전보다 조금 더 복잡한 감정도 든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무심하고 게으른(것처럼 느껴지는) 영화에 대한 감정이다.


"요컨대 극단적 가학과 피학을 형상화하는 가운데, 정작 영화 자신이 그 폭력의 작동 과정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무심하다는 겁니다. 이때, 문제는 영화가 그 폭력의 메커니즘을 객관적인 3인칭의 시점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스스로를 구경꾼의 위치에 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경꾼의 시선은 타자의 고통받는 육체와 타자로부터 되돌아오는 응시에 의해 흔들리거나 균열되는 대신, 그 타자로부터 거리를 둔, 좀 과장하자면, 그 광경을 그저 ‘영화’로 보는 시선입니다. 영화가 영화 속 인물들과 실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는 건 앞서도 말했듯, 이들의 장르적 틀이 실은 중층적인 현실의 침입을 가로막는 환상의 울타리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럴 때, 가해자와 피해자는 전형적이고 이미 완성된 이미지로 덩그러니 놓여 무의미한 폭력의 연쇄 안에 게임의 말처럼 존재하게 됩니다."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과 태도에 관해 생각해보는 건 중요한 문제다. 남다은은 영화 자체에 대한 글뿐 아니라 영화 비평의 위치성을 자문하고, 영화가 취해야 할 윤리적 방식에 대해 말한다. 더불어 사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영화, 어디선가 본 듯한 장치들을 가져와 어설프게 재구성해놓은 게으른 영화도 지적한다. 남다은의 글을 다시 곱씹으며 생각한다. 나 또한 (분노의 현현을 위해 복무하는 듯한) 도구화에 지나지 않는 서사적 장치, 폭력을 형상화를 단지 '영화'로만 소비하고 소멸하는 영화에 대해 되묻고 싶다고.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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