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임경선
10년 전 관계 맺은, 5년 전 관계 맺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결국 관계는 기억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그때 그 사람은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을까,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 너와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끊어낸 관계지만 (기억에 의해) 아직 이어져있을 수도 있고,
내가 잊고 있었던 관계라 여겼지만 실은 이미 끊어진 관계일 수도 있다.
그 관계에서 어떻게 내가 기억되고,
어떤 마음으로 나를 좋아했고,
얼만큼의 진심이 있었는지에 대해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상대의 모습으로,
혹은 상대의 모습을 떠올리는 나의 기억으로 짐작할 뿐이다.
요즘 틈틈이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문장 하나, 교환일기 한 편마다 일기를 주고 받는 상대방에 대한 사려 깊음이 돋보인다. 특히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두 여자의 진실되고 정직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두 사람만이 아닌, 독자에게까지 이 글 한 편 한편이 공유되다니. 참 한 장 한 장 넘기기 아까운 책이다. 그 중 인상 깊은 구절이 남아 기록해본다.
170p.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 내가 무리해서는 안 돼.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되는 진리지. 내가 나를 억누르고 상대가 원하는바대로 하게 두면, 그리고 아무리 봐도 그 요구가 부당해 보인다면, 내 안에 분노가 쌓이게 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의무감에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그 상대를 좋아할 수가 없어. 각자의 존엄을 가진 인간 대 인간으로 좋아하고 싶으니까 그분들한테도 솔직해지고 싶었지.’
임경선 작가는 남편의 예전 가족(시댁)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언급한 교환 일기 챕터에서, 안부전화 드리는 문제로 남편과 시누이에게까지 지속적인 강요를 받았다고 했다. “전화 좀 자주 해라. 그게 뭐가 어렵냐.”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이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끝끝내 응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안부전화 자주 드리는 거?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거 할 수 있어.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돼. 직장생활도 그렇게 오래 했는데 그 정도 연기도 못 하겠어? 하지만 내가 굳이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것에는 단순히 “내가 하기 싫어서”를 넘어선 다른 이유가 있어.’
“나는 내가 함께 새로이 가족을 이룬 그 남자의 예전 가족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싶어.”
진심으로 좋아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에 대한 책임.
연기할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타인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강요할 수 있는 관계는
근본적으로 건강한 관계가 아니야.’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울컥했다. (작가의 말대로) ‘사회가 일방적으로 부과한 권위체계에 어떻게 아무런 의문도 없이 그대로 복종할 수 있어?’ 책 읽는 나를 멈춰 세우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마음 정리를 한다고들 말한다. 쉽게 접을 수 있고, 그 마음과 함께 박힌 기억을 흔적 없이 지울 수 있다면 우리는 정리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로 끝나지 않는다. 좋아하게 되어버린 그 이후의 삶을 우리는 계속해 살아가야 한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태도란 참으로 멋지구나,
그리고 소중하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