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내가 자주가는 약간 큰 마트가 있다.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큰 마트3개가 경쟁을 하고 있고 사이사이 과일, 반찬, 생선가게 등이 끼여 있다. 새벽 배송을 이용하기도 하고, 주말 언니 랑 같이 어슬렁 산책길에 슈퍼를 가기도 하지만 때론 혼자 뛰어가서 장을 보고 배달접수후 집까지 뛰어오면 뭔가 큰 미션을 완수한 느낌이 든다.
주말 가벼운 맘으로 뛰어 들어간 슈퍼에서 딸기를 살까 말까 주저하고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나타나셨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 재밌는 분이시다. 짧은 까까머리에 약간의 무스를 바르셨고 흰머리도 희끗하며 구수한 사투리를 쓰시는 이 슈퍼에 넘버 쓰리 아니 실까?
딸기를 보고 있으면 두개 사면 2천원 할인, 감을 보고 있으면 타임세일 한 개 더 라 외치신다. 그러면 난 뭔 가에 홀린 듯 아저씨가 싸게 주시는 걸 고르게 된다. 레드 향을 사가라면서 이렇게 맛있는 레드향 귤은 살아가면서 한번은 먹어야 된다는 둥 하루 종일 외치시는 말 자체가 개그다.
어떨 땐 아저씨 개그로 기분을 전환하고 온다. 장본 바구니를 들고 오면 어디선가 일을 하시다가도 슈퍼맨처럼 나타나서 계산대 위에 올려 주신다.
"아이고 이렇게 무거운 걸 고객님이 드시면 안되시죠~~" 그러면서 내려 놓는 건 내가 고른 무순이나 베이비 야채다.
어제 아저씨가 내가 건넨 인사는 흔한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가 아니었다
“신나게 사세요”
“무어라구요 신나게요? 신나게만 살면 될까요?” 난 개구장이처럼 물어보았다.
넘버3아저씨의 대답 “신나게만 살면 안되고 하루 하루가 뜻있어야 죠”
“뜻있고 신나게 보내세요”
고전 한 편을 읽은 감동이 밀려온다.
그래 신나게 살되 뜻있는 매일이 되어야 하는구나.
이렇게 멋진 시장아저씨가 나의 기분을 업 시켜 주신다.
돌아오는 길 노랑 불빛 커피가게에 들러 첼바와 아리차 원두를 샀다. 작가 사장님은 최근 몸이 안 좋다 하셨는데 통풍이 도지셨다고 했다. 고기를 많이 드셨는지 맥주를 많이 드셨는지 물어왔더니 맥주는 10년전에 끊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슬픈 일이. 그래서 이곳은 코냑 위스키는 있어도 맥주가 없구나.
이 가게 비밀을 알아 낸 듯 뿌듯함이 밀려온다. 오늘따라 가게에 발 딛을 틈 없이 손님이 많다. 내가 다 기분이 좋다. 내 맘대로 첼바라 이름 지은 유기묘 출신 고양이는 내가 원두 콩만 사면 뛰어나와 밥을 와그작 냠냠 먹는다. 그 모습에 행복을 담아 향 좋은 원두콩을 안고 나온다.
나는 우리 동네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