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팅도 데이트인가요?
웨이팅이 없는 곳을 잘 안다. 기사 식당이나 24시 뼈해장국 집, 우리 집 앞 짝태와 노가리 술집, 회사 옆 아파트 상가의 스파게티 클럽. 아, 요즘은 디저트도 중요하니까 솔드아웃이 흔치 않은 곳을 읊어 보자면, 파리 바게트, 메가 커피(감자빵이 맛있다.), 나름 입소문이 났다는 프랑제리(역시 회사 바로 옆에 있다.), 베스킨라빈스 31.
기다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는 웨이팅이라는 단어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 기다림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느낌 때문이었다. 분초를 쪼개어 먹을 것을 기다리는 그 영겁의 시간. 시간은 멈춘 듯이 흘렀고, 흐른 듯이 멈춰 있었다. 두 번 다시 웨이팅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2021년으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 여기 곰석과 함께 압구정 어느 유명한 베이글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 왜인지 모를 설렘과 같이.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나는 우산을 잘 안 쓰는데, 곰석은 손바닥만 한 우산을 펼쳐 우리의 하늘을 가려 준다. 서로 처음 방문하는 가게가 익숙하지 않다. 남들 다 줄을 서니, 우리도 눈치껏 맨 뒷줄에 몸을 실었는데 어느새 뒤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늘어섰다. 시덥지 않은 말을 꺼내 본다.
딱 좋은 시간에 온 것 같아요.
곰석은 왜 지금이 딱 좋은 시간인지에 대해 덧붙인다. 이렇게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말을 던져도 살은 얼마든지 붙을 수 있다. 내가 웨이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나 보다.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베이글 가게 맞은편에 자리잡은 잡화점 얘기, 웨이팅 라인에 설치된 난로 얘기, 베이글 가게 마스코트로 보이는 조랑말 얘기. 주제는 무궁무진하고 나는 조잘댔다.
휴대폰 번호를 등록한 다음으로부터 약 1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예쁜 가게를 구경했고, 술을 마실 수 있는 팝업 스토어에 들어가서 약간 알딸딸한 상태가 되었다. 다시 베이글 가게 앞으로 돌아왔을 땐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물 생각에 더욱 두근대는 마음이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곰석의 얼굴을 흘긋흘긋 봐서 그런가. 모르겠다, 생각보다는 더 많이 두근댔다.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곰석의 얼굴도 환하고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웨이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됐다는 건 착각이었다. 그것은 무지했던 지난 날과 관련이 깊었다. 곰석을 만나고 기다림의 미학을 알아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가게 문 앞에서 기다렸다. 지루함이 끼어들 틈없이 기다렸다.
곰석과 같은 것을 기다린다는 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