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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Apr 28. 202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

밀란 쿤테라 아닌 나의 이야기

텅빈 운동장엔 오늘도 봄 햇살이 빛나고 운동장 주변엔 작고 어여쁜 꽃들이 순서를 다투며 피어나고 지고를 반복한다. 누구 하나 감탄해주지 않아도 묵묵히 할 일을 해 내고 있다. ‘....때문에’라는 핑계로 자주 주저 앉고 망설이는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때문에’란 결국 핑계일 뿐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고 말없이 가르침을 준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풀꽃반지를 만들 토끼풀이 피는 계절이었던 것이다.

코로나의 ‘코’도 모르는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찬란한 그 나이 딱 한 번 뿐인 봄을 집 안에서 버티고 엄마와 아빠들은 안타까움에 몸부림치고 교사인 나도 텅빈 교실과 운동장을 보며 슬퍼한다. 누구에게나 슬프고 참담한 계절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을 내뿜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 때문에’라는 핑계를 주었다. 그 때문에 하지 못한 무수한 일들이 있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일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자리에서 자숙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 운동장 주변에 핀 들꽃들은 ‘때문에’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피어나고 진다. 그들은 코로나바이러스 따윈 원래 상관없다는 듯 누가 보아주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그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저 한 포기 풀이었으면, 이름 모를 들꽃이었으면 참을 수 없는 존재를 이토록 버겁게 드러내는 코로나 따위 상관없었을텐데’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너희들은 참 좋겠다. 코로나를 몰라도 되어서... 마음껏 봄빛을 누릴 수 있어서....

최근에 읽은 책,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에 대해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태도’로 대답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생각으로만, 마음으로만 질문하고 찾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들꽃들은 삶이 기대하는 그대로 행동으로, 태도로 올바르게 자신의 삶에 대답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글로만 느낀 이 말들이 들꽃을 보며 별이 되어 박혔다. 이제 들꽃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니 힘을 내 보기로 한다. 이름없는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 될 수 없다면 지금 내 자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들처럼 묵묵히 내 일을 해야겠다고.... 나를 기다리는 내 아이들에게 들꽃처럼 묵묵히 올바른 태도와 행동을 실천해 주어야겠다고... 오늘 또 힘을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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