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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Apr 28. 2020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이 나에게 준 것

당연해서 당연히 몰랐던 마법 같은 우리의 일상에 대한 그리움

 바람이 쌩쌩 부는 아침이다. 지난 주말 지금껏 미루던 겨울 옷 정리를 했는데 어쩜 이렇게 다시 겨울바람이 불어온담. 일주일 더 기다릴 걸 그랬나. 살짝 투덜대며 겨울 외투를 꺼냈다. 얄궂게도 하늘은 어찌나 예쁜지...


오늘도 지각이다. 이번 주 내내 지각을 기록하는 중이다. 5분만, 10분만 부지런하면 문제없을 터인데.. 턱걸이도 안 되는 말 그대로

 '지각'

  이유는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혼자 집에 있을 아이의 아침과 점심, 온라인 수업을 위한 준비이다. 조금 익숙해지면 수업을 위한 준비는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밥솥 버튼을 누르고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남편이 포기하지 못하는 에스프레소를 커피 향도 모른 체 모카포트로 내려준다. 그 후 아침 상에 올라갈 반찬을 챙긴다. 며칠째 비슷한 반찬..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마저 최선이라고... 그리고 점심 준비. 메뉴가 늘 거기서 거기.. 그래도 어쨌든 부랴부랴...

비슷비슷한 점심 메뉴들

  이런 미션들을 끝내고 시동을 걸고 출근을 시작하며 시계를 본다. '또 지각이군. 턱걸이도 안 되는 지각' 조금이라도 시간을 당기기 위해 달리고 싶지만 하필 오늘따라 아주 아주 '정직한' 운전자들이 나를 지켜준다. 과속할까, 신호 위반할까, 사고 날까. 아주아주 정직한 운전자들께 감사를 해야 할지, 조금은 심술을 부려야 할지 고민하며 어쨌든 출근을 마쳤다.


 숨을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그동안의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이 나에게 준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이 상황은 우리 모두를 집 안에, 마음 안에 감금시켰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타이틀 아래 '집 밖은 위험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학교가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적막하고 쓸쓸하다.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은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미래의 학교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 중. 그러나 나에겐 너무나 현실. 어제 문득 인터넷 기사에서 '온라인 개학 = 엄마 개학'이라는 글을 읽었다. 아이의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숙제를 확인하는 일이 오롯이 엄마에게 떨어진 과제가 된 것이다. 나에게도 다르지 않다.


  어제 퇴근 후 아이가 이야기한다. '엄마, 과학 수업 중 실험 관찰 작성하는 게 있는데 실험을 하지 않고 그냥 쓰면 거짓말이잖아. 그래서 엄마가 오길 기다렸어.' 사실 얼렁뚱땅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쨌든 아이와 컴퓨터를 다시 켜고 실험 준비물을 챙겼다. 거름종이가 없었으므로 다행스럽게도 집에 있던 하얀색 커피 필터를 잘라 준비를 했다. 그 외의 것은 아이가 해 나갔고 실험 계획도, 결과도 작성해 나갔고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선생님들께서 그동안 잘 가르쳐주셨구나 느끼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두둥..... ‘미술 과제'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잖아?" 했더니 "그래도 엄마가 있을 때 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학교의 친구들과 선생님이 옆에 있기만 해도 안심이 되었던 것처럼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집에서는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두 가지 숙제를 마치니 밤 12시였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났다.


  학교가, 그리고 점심 급식이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었는지,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너무나 당연해서 당연히 감사한 줄 몰랐던 일상이 그립다.

  

  유치원은 온라인 개학이 아닌 '무기한 개학 연기'라는 타이틀이 주어져 있다. 개학 전까지 온라인으로 가정에서의 활동을 지원한다. 매일 2가지나 3가지 활동을 안내해서 피드백해 주고 글로, 혹은 전화로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눈다. 활동 안내를 위한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지며 중독자 아닌 중독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키즈노트를 열어 '안녕하세요'로 시작되는 글 쓰기이다. 아침 출근길에 보았던 풍경, 행복했던 기억들을 꺼내 들어 결혼 전 남편에게 아침마다 문자를 받았던 설레임을 생각하며 나의 아이들에게 글을 쓰고 있다. 그 몇 줄 적는 일이 뭐 그리 어렵겠냐만은 몇 주째 반복되는 이 일이 요즘은 결코 무난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지금껏 마주한 적 없는 이 현실이 서럽고 슬프고 절망적인데 그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고 싶다. 코로나의 ‘코’도 모르는 아이들이 이 어려움을 그대로 감내하고 있을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기분 좋은 말, 아름다운 말, 행복한 말을 고르려 노력한다. 잘 되는 날은 조금 길게, 어려운 날은 단 몇 줄로 마무리.


  언제쯤 우리는 소중한 줄 몰랐던 그 당연한 일상으로 마법처럼 복귀할 수 있을까? 일상이 ‘마법’이었음을 그동안 정말 몰랐다. 운동장은 언제쯤 아이들 웃음소리와 뛰는 소리로, '조심해'라는 선생님들의 외침으로 넘실댈 수 있을까? 그 일상이 시작된다면 그 운동장을 다시 마주한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냥 펑펑 기쁘게 울어버릴 작정이다. 소중함을 몰랐던 그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기에....


  운동장 한편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 들꽃들을 보니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봄이 왔고 그 봄이 지나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봄맞이꽃’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당연해서 당연히 몰랐던 일상의 소중함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은 감사한 줄 몰랐던 당연한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게 했다. 또 앞으로 무엇을 알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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