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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May 02. 2020

아직도 꿈이 있나요?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나의 꿈은 무엇일까?

몇 년 전 독서 모임을 하면서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업가가 되겠다, 책을 내겠다, 건물주가 되겠다, 대학 강단에 서겠다... 등등등.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포부들도 대단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 무엇이었는지, 또 앞으로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무슨 꿈을 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생각해 본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 나이에 무슨 꿈을 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 몇 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누군가 꿈을 물어본다면 '글쎄요....'라고 이야기하며 말끝을 흐릴 것 같다. 아니, 지금도 나에게 꿈을 물어볼 누군가가 있을까?


어느새 마흔이 넘고 보니 꿈이라는 단어가 생경스럽기도 하다. 아직도 가슴 뛰는 두근거리는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일까? 이제 시작해서 이룰 수 있을까? 막연한 어떤 바램들은 물론 있는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겠다, 좋은 선생님, 요리를 잘하는 엄마, 현명한 아내, 이성적인 엄마, 착한 딸이 되겠다.... 등등등. 원대한 '무엇'이 되는 꿈이 아니라 소소한 바램이랄까 희망 같은 것. 이것도 꿈이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나의 꿈일까?


파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파도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이 자체로 하나의 우주같다.





아득한 그 시절 간절한 꿈이 있었을까?


대학교 4학년 때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매일 새벽 도서관을 올랐다. 계단이 160개쯤 되었는데 계단의 수를 세며 오르고 내렸다. 그 당시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는 공립유치원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일부 친구들은 큰 도시의 잘 나가는 사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로 취직을 시작했지만 다른 길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매일 책을 끼고 외우며 시험을 준비했다. 고등학생 때보다 훨씬, 지금까지 제일 열심히 공부한 시간들이었다. 무언가에 최선을 다 한, 간절한 시간이었다.


얼마 전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다 그 당시 공부하던 아동 발달 심리학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추억에 젖어 잠시 책장을 넘기다가 보니 그 책 중 한 페이지에


아이의 꿈을 키워주는 교사가 되자


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여러 번 쓰고 또 쓰며 겹쳐 썼는지 진하고 색이 알록달록 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한 내용이 거기에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무엇'이 되었건만 목표에 심취하여 '어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의 꿈을 키워주는 사람, 누군가의 첫걸음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 그 바탕의 1%가 되어주는 사람. 그 어떤 꿈의 실체였다.




마흔 넘은 내가 만난 스물셋 나의 꿈


그동안 어떤 교사로 살았을까? 과연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었을까? 아이들의 소중한 그 꿈을 진심으로 인정해 주었을까?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그 꿈들을, 꿈꾸는 마음을 진심을 다해 응원해 주었을까?


축구 선수가 될래요, 발레리나가 될래요, 엘사가 될래요, 가수가 될 거예요, 헤어디자이너가 될 거예요, 헬로카봇이 될래요, 아쿠아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그 바램을 진정으로 공감해 주었을까? 혹시 '응 응, 그래 그래'라며 건성으로 흘려듣지는 않았을까?


꿈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떤'이다.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어떤 무언가가 될 것인가, 이 것이 꿈이었다. 그래, 이제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어떤’을 진지하게 찾아보자. 아이들의 무엇이 되겠다는 그 꿈을 어떻게 응원해줄 것인지, 어떤 무엇이 되는 꿈을 꾸도록 도울지 고민해 보자.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무엇이 되기 위한 열정은 어디에? 꿈의 크기가 작아지고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위대한 무엇이 되기보다 위대한 무엇이 될 아이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 사진을 찍을 때 보면 아웃포커싱 효과가 있다. 주인공이 도드라져 보이기에 우리는 주제에 몰입할 수 있다. 그 배경으로서 내 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하는 멋진 꿈을 꾸겠다. 성큼성큼 갈 수도, 더듬거리며 걸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내 삶이 어떤 것에 가 닿을지 모르니....


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 시도하는 길이자, 좁고 긴 길이다. 지금껏 누구도 완전하고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 이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누구나 그 길의 끝까지 가려고 애쓴다. 어두워서 더듬거리며 걷는 이도 있고, 환한 길을 성큼성큼 가는 이도 있고, 저마다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각자가 출생의 흔적들, 태고의 점액과 알껍데기를 끝까지 지고 간다. 인간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에, 도마뱀에, 개미에 그쳐 버리는 사람도 많다. 상반신만 인간이 되고 하반신은 물고기로 남는 이들도 많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서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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