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발효와 인격체 성장의 유사성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찰
엄마로 살아가기
이 화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이는 그저 더할 수 없는 축복이고 사랑이며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춘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리 아이 사춘기는 조용히 넘어가는구나 했다. 오만이고 자만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아이는 매일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러닝머신에서 걷고 있는 것처럼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종알종알 이야기를 잘해서, 잘 웃어서,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나만,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걸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살고 있노라고 감히 자만하고 있었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작고 귀여운 몸에 손가락이 5개, 발가락이 5개인 것이 축복이었다. 잘 먹기만 해도, 잠만 잘 자도, 응가만 잘해도 '잘했다, 잘했다.' 온갖 격려를 했다.(그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때 누군가 '평생 받을 효도는 지금 다 받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말도 안 된다 생각했다.
아이의 변화는 언제부터였을까? 무엇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무수히 자책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매일이 쌓여가고 있다. 아이도, 부모인 우리도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다.
"너무너무 좋아."
모든 것에 긍정적이던 아이는
"왜?", "그걸 꼭 해야 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마음대로 생각해."
매일 반문하고 따지고 툭하면 대화를 단절해 대는 인격체로 변화하고 있다.(이 또한 어떤 과정이겠지.)
쌀은 어떻게 술로 성장하는가?
얼마 전 막거리를 처음으로 빚었다.
쌀, 한 줌의 누룩, 소량의 효모와 물이 쿰쿰하면서도 알싸한 알코올을 내뿜어가는 신비스러운 과정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쌀을 100번은 씻고 쪄서 누룩, 효모, 물을 섞고는 매일매일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망한 거 아니야.'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톡톡톡' 탄산 터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딱 베**라*스 슈팅스타처럼 톡톡톡, 토도도독. 며칠이 지나니 탄산 터지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분주해져서 빗소리처럼, 혹은 잘 달구어진 팬에 전 부치는 소리처럼, 밤하늘 가득 터지는 폭죽 소리처럼 들렸다.(이래서 비 오는 날엔 '막걸리와 전'이라고 하나?)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다시 톡... 토... 독... 조심스럽게 탄산이 올라왔다. 결국에는 맑갛게 가라앉아서는 별똥별처럼 아래서 뽀얀 꼬리를 달고 위로 솟아오르는 게 다였다. 그 시끄럽고 부산스럽던 시간이 지나 이렇게 고요해지다니. 뚜껑을 열어보니 쿰쿰하고 달짝지근한 막거리 향이 났다. '신기하다'라고 말을 내뱉는 순간, 인격체 성장과 빗대는 깨달음과 묵상의 순간이 찾아왔다.
서서히 시작해서 분주해졌다가 다시 고요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한 인격체가 성숙해 가는 과정과 비슷하겠구나 싶었다. 천천히 성장하다가 분주해지는 그 순간이 자아가 폭발하는 사춘기 시기이겠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쏟아지는 빗소리 같기도, 사방팔방 솟아올라 터지는 폭죽 같기도.
잦아지겠지, 세상을 폭삭 담가버릴 듯 쏟아붓던 비도 결국엔 그치고,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하는 한파도 결국엔 지나가고 길고 긴 터널도 밝은 길로 이어지듯 이 또한 지나가겠지, 고요한 시간이 찾아오겠지. 그러고 나면 한두 번의 솟아오름은 별똥별처럼 아름다워지겠지.
기다려보자. 애정을 가득(은 힘들겠지만) 담고 기다려보자. 그 과정이 결국은 아이도, 우리도 하나의 인격체로 발효, 성숙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