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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Oct 27. 2023

관계에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과는 건강한 관계입니다.

나의 오랜 친구


 나에게도 오랜 친구가 있다. 솔직히 그 친구와 접점이 되었던 대학교 시절은 그 친구의 반수 준비로 인해, 반년, 방학 기간을 빼면, 고작 4개월이 전부였다.

 처음 그 친구와의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엄마의 영향으로 내 유년 시절 내내 그리고 20대까지는 교회 활동을 했었다. 대학교도 기독교적 성격이 강했는데, 채플 시간에 대한 출석 체크도 까다로웠고 반드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었다. 교회를 다니고는 있었지만, 깊은 믿음 생활을 하고 있지 않았던 터라, 타 종교 혹은 무교인 학생들에게는 너무 강제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서 정한 교칙에 대해서 그저 지나가듯 투덜거렸다. 그때, 그 친구의 말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 너무 오래전이라 정확히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당시, 그 친구는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을 때라 더욱 내 불만이 좋게 들리지는 않았던 듯했다. 그렇게 저 애와 친구는 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며 입학식과 함께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랑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다. 오티 때의 일은 잊어버린 지 오래, 이 솔직한 성격의 친구에게 홀딱 빠지고 말았다. 그 친구와 환승역까지는 매일 등하교를 같이하게 되며 그 친구의 빵 공장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시작으로 온갖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곧 그 친구는 반수를 결정했고, 친구와 이별했다. 추후 친구는 내가 살고 있던 근처 대학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각자의 대학 생활로 우리는 지척에 서로를 두고도 만나지 못한 채, 그 친구의 마지막 학기쯤에서야 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회사 생활로 서로의 삶이 달라지자, 우리가 다시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저 가끔 하는 네이트 채팅으로만 안부를 물으며, 보자는 말만 반복했고, 드디어 우리가 20대 중반이 되었을 즈음에서야 만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의 관계도 깊어지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는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고 육아의 삶을 살게 되었고, 나는 회사 생활과 독립 그리고 집사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도 깊어져갔다.

 자주는 아니지만 서로의 기쁜 날, 서로가 문득 보고픈 날이면, 어제도 연락한 듯 언제나 편안하게 안부를 묻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긴 여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곳은 정말 정반대인데, 그 친구는 정릉 산골, 나는 문정 컨츄리에 살고 있다. 서울 끝과 끝, 친구는 여러 번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 오려했지만, 서울 집 구하기가 내 맘 같지는 않다며, 문정에 올 때면 아쉬움을 표했다.

 친구는 요리를 잘한다. 법정 휴정 기간에만 쉴 수 있는 내 예전 회사 특성상 친구를 보기 위해, 내 휴가의 하루는 꼭 친구 정릉 집으로 갔다, ‘친구야, 에구구 정릉 할매집으로 놀러 와유’, ‘웅웅 할매, 보고프다’ 우리가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하는 상황극이다. 내가 정릉 집에 갈 때면 제2의 할머니 댁에 가는 것처럼, 맛있는 음식을 식탁 가득 차려주었다.



 친구는 작년을 전후로 인문학 서적을 읽으며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어느 날 내게 건넨 그 친구의 말 한마디,

 ‘내가 오늘 어떤 글을 봤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무 생각이 없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래, 난 너와의 관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어, 그니까 우리는 건강한 친구다.’  나도 친구의 말에 동의했다.

‘ 사실 나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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