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서울국제도서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온종일 글쓰기로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내 어휘는 줄어드는 걸까.
내 머릿속에 어떤 대상이 떠오른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고, 직접 보거나 사용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려는 순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간신히 입을 뗐을 때, 나온 첫마디가 목에 걸려 계속 버벅 버벅거리기만 할 뿐이다. 마치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어떤 날은 입 밖으로 내가 원하는 말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묘하게 뉘앙스가 달랐다. 음? 아차, 나는 발음이 비슷한 다른 단어를 말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을 때에야 내 말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마치 아이폰의 자동완성 기능처럼, 분명 첫음절은 성공적으로 내뱉었지만, 그간 내가 사용한 어휘나 연관된 단어가 우선 선정되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대화를 완성시켜 버린 것이다. 하... 내 안에 자동완성기능이 망가진 것인지. 오늘도 대화 중간중간 버퍼링과 자동완성 오류로 애를 먹었다.
회사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생각보다 풍부한 어휘가 사용되지 않아서일까. 아무래도 내 상태가 한동안은 지속될 것 같다. 급격히 줄어든 독서량이 문제인가 싶었는데, 최근 국제 도서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리버드 티켓을 사겠다고 마음까지 먹어놓고, 또 깜빡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에 마침 반차를 쓰게 됐고, 오늘 드디어 도서전에 다녀올 수 있었다. 대형서점 그 이상을 옮겨 놓은 전시장은 흥미롭기만 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출판사가 있다니, 거기에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 디자인적으로 내 눈을 사로잡았던 책 표지, 독립출판사에서 출간한 신선한 콘셉트의 책들, 또 책 관련 굿즈까지, 그저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치료되는 것 같았다.
관람하기 전, 나는 다짐했다. 정신줄을 놓고 이책 저책, 마음에 드는 모든 책을 사지 않기 위해서. 다행히 함께 간 친구가 있어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고, 가장 맘에 들었던 책 세 권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버퍼링 중이지만, 어쨌든 오늘 찾은 국제도서전에서 시선을 두는 곳마다 눈이 즐거웠고, 그 안에서 내가 흥미로워하는 소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기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오늘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독립출판사가 모여있던 D홀이었는데, 그곳에서 작가와 독자 관련 직원들이 모여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다음에는 내가 어떤 역할로 그곳을 찾을지 알 수 없지만, 그때는 나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