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감 하나씩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의 한마디 말이 주는 울림을 최근 들어 경험했다. 자신마저도 알지 못했던 불안감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그 불안을 잠재워 주는 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을 해준 사람은 나를 처음, 단 10분 동안만 만났던 낯선 사람이었다.
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타로점을 보러 가게 되었다. 딱히, 타로점의 결과를 믿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월간지를 읽고 난 뒤, 맨 뒷부분에 있던 이달의 별자리 점은 빠뜨릴 수 없는 작은 즐거움이었다. 내가 원하던 것들에 대한 긍정적 예측이 담긴 문장들은 묘한 설렘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별자리 운세나 타로점은 여전히 작은 설렘을 주는 나의 즐거움이다.
마침, 인생에서 새로운 chapter를 쓰기 위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설렘은 가진 채 그분 앞에 앉았다. 내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나에게 타로보다는 사주를 추천해 주셨다. 최대 6개월 앞만을 보여주는 타로로는 내가 원하는 답을 말해주면 그뿐, 진지하게 앞날을 보고 싶다면 사주를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결정했고, 내 사주풀이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첫 한마디, 나는 사실 그 한마디로 만족했고 더 이상의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시죠?!'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막상 간절히 원했던 퇴사가 결정되고 휴식 후, 재취업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생각하니 불확실한 앞날에 묘한 답답함과 불안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다른 길, 예전에 잠깐 몸담았지만 단절이 돼버린 경력, 매일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의 힘을 키워 다른 직업군으로 가길 희망하는 나에게 선생님의 그 말은 나를 인정해 주는 듯했다.
완벽한 타인이 온전히 나를 꿰뚫어 본 듯,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었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말해주자, 나는 너무 섣불리 불안해만 했음을 깨달았다.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새 없이, 글쓰기를 하자. 매일 글감 하나, 그 글감으로 만들어 낸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그 앞에는 또 다른 결과가 있을 것이다.
아직, 휴식도 글쓰기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나에게 그 말 한마디는 다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단순한 이 사실만 생각하며, 꾸며냄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자.
나의 행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