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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oi Oct 19. 2023

설거지 타임

고양이의 물놀이


 맛있는 한 끼를 위한 요리 뒤에는 그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을 치우는 일은, 요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정도로 나에게는 귀찮은 일이다. 설거지를 막상 하고 나면,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은근히 수고스럽다. 그날따라 기름기 가득한 음식을 먹었거나, 그릇들이 싱크대 한가득 쌓여버린 날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시작부터가 난관이다.

 식사 후 설거지를 바로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려 하지만, 그 마음을 먹기까지 나와 타협의 시간을 꼭 갖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귀찮음이 커지고, 생각도 많아진다. 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자기 전에는 하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음날로 미뤄질 위험도 커진다.


 내가 혼자 살기로 했을 때,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우리 집에서 갑작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 다른 생명체였다. 그들도 살고자 먹이를 찾아 헤맬 때, 혹시 내 난장판 싱크대를 만나, 만찬을 즐길까 두려워, 내 공간에서 무방비로 공기 중에 음식물이 노출된 상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최근에는 힝구와 함께 살다 보니, 부지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혹여 내가 싱크대에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을 남겨놓으면, 그곳은 힝구의 놀이터가 되었다. 힝구를 보면, 일명 水속성 고양이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들 정도로 물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 물이 흐르는 모습이 신기한지, 물멍을 하기도, 발로 물을 콕 찍어 물맛을 보기도 한다. 수도꼭지에서 흐르고 있는 신선한 수돗물이라면, 힝구의 노는 모습을 귀엽게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설거지를 위해 물을 받아 놓은 그릇 속을 헤집으며 노는 것이라면,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귀찮아도, 내 몸은 자동 반사처럼, 힝구를 싱크대와 분리 조치시키고, 빠르게 설거지를 완료한다. 지지야 힝구! 힝구가 혹여 탈이 날까 하는 걱정스러운, 그 마음은 어떤 상황의 귀찮음도 이겨버린다. 힝구 덕분에 장착된 부지런함에 고맙다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도 설거지 미션을 완료해 버렸고, 이제야 마음이 편안하다. 하고 나면 이렇게 후련한 일거리인 것을 매번 나는 귀찮음과 타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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