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라 불리는 곳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쏘카로 이직한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이직 후 생각보다 전 직장 분들에게 연락이 많이 오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점이 있다. "과장님, 거기는 대기업이랑 어떻게 다르게 일하나요?"
이 글은 한국의 전통적인 조직문화에 익숙하고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이 궁금한,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스타트업의 생태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구체적으로 쏘카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들어왔다면 자! 쏘카의 브런치 글로 이동하자.
나의 경험을 바탕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이므로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사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나는 왜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렸나
(리스크가 있더라도)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큰 업종을 경험하고 싶었다.
(높은 사람의 잘못된 한마디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곳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나는 왜 쏘카로 이직했나
부드럽지만 단도직입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지는 면접이 인상 깊었다.
본인의 회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며, 추천하는 곳에서 함께 일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사회생활 중 경험하지 못한 업계 1위인 회사 한번 다녀보고 싶었다.
쏘카의 첫인상
입사 첫날 ‘SOCAR 백과사전'이라는 파일을 받았다. 기업 미션부터 이메일 가이드, 업무 툴 설명서, 와이파이/프린트 연결법, 디자인 요청 가이드, 인사 규정, 휴가 올리는 법 등 회사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어떤 것은 구글 스프레드로 어떤 것은 프레젠테이션으로... 억지로 틀을 끼워 맞추려 하지도 않고 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형태로 이해하기 쉽게 적혀있다.
삐까뻔쩍한 웰컴 킷 대신 받은 백과사전은 보면 볼수록 쏘카의 성격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주는 듯하다.
마케팅 본부의 첫인상
전 직장에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이서 닥치는 대로 찔러보던 업무를 여기서 20명이 아주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브랜드 디자인과 카피라이팅 등 브랜딩을 고민하는 팀들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CRM팀, 서비스마케팅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니 퀄리티가 다를 수밖에!
덧. 마케터들이 모여있으면 패션회사처럼 화려할 줄 알았는데, 매우 소박하다. 의외다. 더 의외인 것은 사무실인지 도서관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로 조용하다는 것.
업무 툴은 일 하는 방식과 조직문화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구글 문서와 슬랙, 그리고 노션을 활용해 이들은 많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며 스마트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G suite : 일명 구닥(google docs)
전 직장에서는 보안 이슈로 사용할 수 없었던 구글 문서의 사용이 개인적으로는 일하는 방식의 가장 큰 변화였다. 파일 하나를 공유해 의견을 댓글로 남기고, 필요한 부분은 담당자를 소환하며 대댓글을 통해 해결한다. 이 모든 과정이 파일 수정 시마다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의 비생산성을 줄여준다.
slack : 협업에 필요한 짧고 빠른 커뮤니케이션
본부/팀/TF별로 채널이 열려있어 간단한 유관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이곳에서 진행한다. 시간만 잡아먹는 회의를 줄여주는 1등 공신이다.
공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정보가 오픈되어 있어 #검색을 통해 내가 알고 싶은 사업부서의 업무 진행내역과 과거의 히스토리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조직이 커지면서 파악하기 어려운 담당자를 찾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전사 차원으로 묻고 의견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담당팀을 찾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전화하는 일은 이곳에서는 없다.
Notion : 뭐든 다 담는 그릇
구글 문서와는 다르게 스프레드시트/프레젠테이션 등 구분 없는 올인원이자 글도 사진도, 파일도 모두 담을 수 있어 편리하다. 단순 명료하고 직관적이어서 보기에도 좋고 쓰기 편하다.
자유도가 높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고 동시에 처음엔 도대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활용법도 아주 다양한데, 타 부서의 워크스페이스를 참조하여 각자 업무의 특성에 맞게 사용 중이다. 우리 팀은 업무 대시보드로서 각자의 일정 관리과 서로의 업무 진행 현황 등을 체크하는 용도로 주로 활용 중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어느 팀에서 어떤 업무를 담당하건 모두 스마트하게 일한다.
- 데이터를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공유한다.
- 이때 본인이 판단한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의견을 묻는다.
(간단한 경우는 슬랙, 복잡한 경우는 이메일+회의)
- 여러 사람과 의견을 나누고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실행방안과 해결책을 결정한다.
- 담당자는 'why'에 기반하여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방안을 도출하여 보고한다.
(보고는 대부분 이메일이며 컨펌 기간은 아무리 길어도 대부분 하루를 넘지 않는다.)
- 실행한 결과를 다시 데이터로 분석하고 공유한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스마트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직접 몇 번 경험하고 보니 그 스마트함은 구체적으로 다음의 키워드로 귀결되었다.
데이터 기반의 사고
공유하는 문화
빠른 속도
(심지어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는 회사에서 추구하는 일하는 방식의 키워드와도 일치한다.)
만나서 회의를 하든 메일이든 슬랙이든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도 위의 세 가지 키워드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메일
메일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요청 다른 하나는 공유.
요청의 경우 제목에서 명확하게 목적을 밝히고, 배경과 목표/주요 히스토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전달한다. 이후 스레드를 통해 결과까지 피드백하고 공유한다.
공유의 경우 모두가 알고 서로의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공유한다. [디엠 발송 ab테스트의 의외의 결과] 이런류들… 대부분의 이런 메일에는 각자가 본인의 일을 하는데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보인다.
회의문화
슬랙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복잡한 경우 서로 만나서 회의를 하는데, 회의시간이 되면 오차범위 1분 내로 만나서 “안녕하세요” 인사 후 바로 본론에 돌입한다. 5분이든 10분이든 용건이 끝나면 쿨하게 헤어진다. 2분 이상 지각하면 죄송해야 하며, 근황 토크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 업무를 대하는 능동적인 태도
현재 사용 중인 업무 툴을 소개했지만, 사실 핵심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여 테스트해 보고 좋은 점을 공유하여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비단 업무 툴뿐만이 아니라 업무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변화에 능동적이고 빠르게 대응하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면서 널리 퍼트린다.
실패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팀별 주간 리뷰/월간 리뷰/ 본부 전체 리뷰..
리뷰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큰 차이가 하나 있었다.
Lesson and Learn
뭘 했는지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대상에 맞게, 이번 일의 의미/아쉬운 점/다음 고려사항 등을 공유한다는 것. 실패를 탓하지 않고 그를 통해 배우고자 한다는 것은 책에서나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형식보다 본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케터라면 컨셉이나 의미부여를 중요하게 생각할 법도 한데, 조직 구성원들 대다수가 허세를 싫어한다.
한 번은 점심때 이런 대화가 오고 간 적이 있었다.
“OO식당 가지 마~ 주인 컨셉뽕 완전 심해졌어. 자기 설명 다 듣고 주문하라고 하더라고~ 데려 간 사람한테 정말 미안했다니깐”
“나는 컨셉충 싫어해서 원래부터 별로였어. 거기 인스타 글 보면 거의 다 비문이야”
이들의 특성이 너무 잘 드러나는 대화라 생각되었다.
이들은 있어빌리티로 포장하는 것보다 서비스의 질이나 고객만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더 의미 있다 여긴다. 오래 일한 사람들일수록 성실과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업종의 특성과 필수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얼라인 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a : 주체적인 마인드
스타트업에는 혹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던 '회사=나' 마인드의 사람들이 실제 존재한다. 그것도 꽤나 많다. 주말에 비 예보가 있으면 실적이 안 좋을까 봐 걱정하고, 우리가 활용하기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면 직접 테스트해보고 매뉴얼까지 만들어 널리 널리 퍼트린다.
딱! 직장동료
라운지에서 자주 모여 점심식사를 할 때면 주말에 본 넷플릭스 이야기부터 다른 회사의 마케팅 사례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나누지만 정작 사적인 대화는 거의 나눈 적이 없다.
물론 티 나지 않게 친한 인맥들도 있겠지만, 직장동료의 적당한 거리와 긴장감을 유지하며 생활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나의 예상과 일치한 포인트
- 스마트하게 일한다
- 데이터 기반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 빠르다
- 직급이 높을수록 더 똑똑하고 더 많이 일한다
- 합리적이다
- 공유가 잘된다
스타트업에 대한 나의 예상이 빗나간 포인트
- 시스템이 너무 잘 잡혀있고 심지어는 strict 하다. (물론 의외의 구멍들도 있지만..)
- 의욕 넘치는 활기찬 분위기는 아닐 수 있다.
- 가족 같은 동료보다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 마케팅 : 새롭고 다양한 시도
- 훌륭한 워라밸
- 어느 정도 수평적이다 (예상보다는 정도가 낮아서 예상이 빗나간 포인트로 넣었다)
- 리스크 : 아무리 업계 1위여도 언제든 회사는 망할 수 있다
예상과 일치한 것과 빗나간 것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전 직장에서 나는 임원 포함 약 5명인 신사업기획실이라는 독립적인 조직에서 브랜드를 새로 만들고 체계를 잡아가는 일을 했다. 쏘카는 어느덧 10년을 바라보고 있는 업계 1위의 회사였다. 표면적인 소속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바뀌었지만 실질은 반대인 느낌이 있다.
전 직장 사람들이 두 번째로 많이 하는 질문이다. 나는 매번 이렇게 대답한다.
이런 후회를 하긴 했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좀 더 빨리 이직할걸 그랬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