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카피라이팅 공부 '문장 수집 생활'을 읽고
커리어를 바꿔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해보니 확실히 글쓰기와 카피라이팅 능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매우 하고 싶었던 일을 업으로 하게 되었으면서, 근 두 달여간 일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느 순간에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도망가고 싶은 때도 있었다.
최근 회계팀에서 일하는 친구의 업무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너무나 벗어나고 싶었던 옛날이 떠올랐다.
재무팀을 죽도록 벗어나고 싶었던 5~6년 전 그때..
드디어 그토록 하고 싶다던 마케터가 되었는데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노력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다음날, 리디북스에서 카피라이팅, 카피라이터와 같은 단어를 검색했다.
그리고 바로 눈에 띄었던 책 : 전 29CM 헤드 카피라이터 이유미의 '문장 수집 생활'
술술 쉽게 읽히는 문체라 부담이 없고 작가가 공감한 소설 속 문장을 보며 감탄을 하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 말랑해진다. 뭐든 긍정적으로 바라볼 마음의 준비가 자동으로 되어 ‘나도 열심히 해봐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게 되는 그런 책이다.
출근길에 소설책을 읽으며 공감되는 문장에 밑줄 긋고, 사무실에 도착해 필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문장 수집가. 그는 업무에 필요한 카피를 작성할 때 이렇게 수집된 문장들 속에서 주제에 맞는 문장을 검색해 응용하는 카피라이팅 훈련을 했다.
‘지금 입기 좋은 간절기 아우터’라는 흔한 카피를 ‘계절의 경계에서 입는다’로 바꾸는 힘은 끊임없는 이 훈련의 반복 속에 나왔겠지...
책을 읽을 때 공감되거나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표시하며 읽고 필요할 때 들춰보는데, 작가가 제안하는 대로 이번에는 카피로 활용하고 싶은 문구까지 더해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그 문구들을 처음으로 스마트폰 메모장에 필사해보았다. 책을 다 읽고 내가 필사한 문장들을 보니,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일관되게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이 보인다.
내 얘기 같으면서도 남다른 시선이 담긴 글. 그래서 책의 목차도 이 관점에 따라 표현한 것 같다.
[다르게 본다. 다르게 쓴다. 다르게 산다.]
앞부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카피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대부분의 소비는 필요보다 욕망에 의한 것이기에, 카피라이터는 구매 동기를 불러일으키도록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도 몰랐던 나의 마음을 건드려 주는 두 줄짜리 카피가 할 수 있는 위로 (두 줄짜리 카피가 할 수 있는 위로라는 이 표현이 너무 멋지다. 나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기억하자)
이런 마음의 터치를 위해 작가는 본인이 읽는 소설 속에서 수집한 문장을 29CM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의 카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 예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오후 4시는 집중하지 않으면 야근하게 될지도 모르는 시각,
내일 오후 4시는 짙어지는 가로수를 보며 커피 한잔하는 시각이면 좋겠습니다. → 시계
당신의 시선을 영원한 정지 화면으로 → 사진
제자리에서 그녀를 잊는 법 → 줄넘기
처음 만난 사람과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마시기에 적당히 작은 → 커피잔
발과 바닥이 닿는 접점이잖아. 난 그게 익숙해야만 낯선 곳을 밟을 수 있어 → 신발
천국을 덮은 느낌 → 이불
어떻게 소설 속 문구를 통해 카피에 적용할 생각을 하지?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성격 급한 내가 조금씩 예시에 지루해질 때쯤 창의적 필사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에서 언급한 ‘공감’이 바탕이 된 ‘다름’에서 공감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하는지 설명한다.
공감
나도 너무 좋아하는 은유 작가의 표현이 등장한다. '무엇에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어디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법이다.'
공감 가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나 또한 공감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글, 라디오, 대화, 간판, 그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등에 잘 반응해야 한다. 감각의 촉만 세우고 있다면 어디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아이디어는 잘 기록하여 모아 두자. 언젠가 쓸 날이 온다.
1. 일상성
막연하고 추상적인 말, 그리고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말은 사람들에게도 가닿기 어렵다. 고민 없이 관성적으로 쓰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내가 이해하고 경험한 것을 표현한 언어가 살아있는 말의 힘을 가진다.
지극히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작가의 할 일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2. 솔직함
가장 매력적인 글을 솔직한 글이다. 글을 쓸 때 쉽게 빠지는 함정은 실제의 나보다 더 나은 나로 보이기 위해 포장하는 것. 이는 글쓰기와 관련한 여러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글쓰기와 관련한 책에서도 보고 명심하고자 했던 하지만 본성을 이기기 쉽지 않은 포인트다. 의식적으로 내가 쓴 글을 검토하면서 필터링해야 한다.
3. 타깃 좁히기
글을 쓰거나 기획을 할 때도 모두에게 통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타깃을 좁히되 대신 다양해야 한다. 공감을 얻기 위한 여러 가지 사례가 필요하다.
책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는 이제 ‘다름’을 만들어내기 위해 문장을 수집하고 그것을 카피로 바꾸는 방법이 소개된다.
1. 필사
작가의 출근 루틴인 필사는 중요한 독서의 한 과정이다. 역시 기초 훈련은 모방에서부터 시작한다. 일하면서 필요한 카피에 도움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해보기로 한다. 나는 출퇴근 길에 책을 읽고 퇴근 후 저녁시간에 필사를 해보고 있다.
2. 다른 단어 쓰기
무의식 중에 그냥 사용한 단어,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표현 등 고민 없이 글을 쓰면 관성적인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글을 쓰고 난 뒤 읽어보면 내가 반복적으로 쓰는 단어가 있다. 이런 단어는 뜻은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로 바꾸는 노력을 하자.
제품을 새롭다. 신선하다. 놀랍다 라는 말로만 설명하는 건 재미가 없다. 조금만 비틀어 고민해보자. 때로는 없는 이유도 만들어야 하는 게 카피라이터의 역할이다.
내가 쓰는 카피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맞닿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그래야 평범한 데서도 특별한 울림을 주는 글이 나올 수 있다.
최근 맞춤법 검사기와 함께 고정적으로 국어사전을 띄워놓고 수시로 유의어를 찾아보고 있다. 매우 공감이 되면서도 스스로 올바른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생각하니 뿌듯해졌던 대목. 하지만 국어사전도 명쾌한 해답을 주진 못하더라. 필사를 하면서 이런 단어와 표현도 수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3. 풀어쓰기
단어를 있는 그대로 쓰기보다 풀어써보려는 시도를 하자. 예를 들면 자전거를 타다는 페달을 힘껏 돌려 앞으로 나간다.라는 식으로…
4. 구체적으로 쓰기
구체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묘사와 비유를 활용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쓰게 될수록 공감 포인트를 세분화할 수 있다.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을 발견해 내는 세심한 표현들은 소설에 많다. 그래서 소설을 필사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어떤 대상을 묘사할 때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 고수의 방식이라는데, 예시를 보니 이해가 된다.
세탁조 안이 꽉 차도록 들어간 빨래는 바지락 국물 같은 색의 물속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출근길 지하철에 꽉꽉 들어찬 사람들을 보고 있는 하느님 같은 기분
이 외에도 카피를 쓰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포인트
흔히 연관 짓지 않는 단어와 단어를 연결한 단어의 낯선 조합 : 예쁨의 발견, 울적한 공통점, 목적지를 바꾼 바람
카피를 쓰기 전 그 글감이 존재하는 분위기를 떠올려 그 톤을 유지하면서 글을 쓰자. 읽는 사람의 눈 앞에 이미지처럼 그려지도록
구입하는 사람과 실제 사용할 사람, 그리고 그것이 놓여 있을 모습까지 상상하며 카피를 쓰자. 사고 쓰는 사람의 감성과 취향을 고려하고 물건이 놓일 상황과 분위기를 고려하자.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 한켠으로 '작가의 감성과 일하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가 일치해서 좋겠다.'는 부러움이 함께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브랜드는 직관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묘사와 비유를 통한 감성적인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매번 상투적으로 쓰는 단어를 다르게 표현하는 것부터 고민하고 실천해 보는 생각으로 메모장에 내가 카피를 쓸 때 자주 쓰는 단어와 평소 글을 쓰면서 자주 쓰는 표현들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이번 책을 읽으며 내가 수집하고 싶은 문장들도 모아보고, 평상시에 생각나는 나의 생각들도 글로 정리해 보고 있다.
이 책의 포인트는 책을 읽고 문장을 수집하는 생활을 하는 것. '생활' 이전에 '습관'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독서를 하고 인증하던 '슬기로운 독서클럽'의 기록 버전 '슬기로운 기록클럽'에서 평일 저녁 매일 읽고 필사 중이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퇴말고'에서 읽은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을 정리하고 의지를 다잡는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글을 읽고 단어와 문장을 수집하고, 주변을 새롭게 보고 관찰하려 노력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도, 컨셉진 에디터 스쿨을 듣고도 매번 '주변을 관찰하고 다르게 보기 위해 노력하자'는 마음은 가졌지만, 무언가 행동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않으니 지속되기 어려웠다. 이번에 구체적으로 실천할 방법을 찾은 느낌이다. 매주 카피라이팅과 관련한 책을 하나씩 읽으면서 당분간 이 습관을 유지해 보기로 다짐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미션 : 한 달마다 현재 브런치 글들의 제목을 바꾸어 보자. 모든 브런치 제목이 스스로에게 흡족할 때까지!
이 글은 어느 브랜드 마케터의 카피라이팅 훈련의 첫 번째 기록이다. 가이드가 될 책의 리뷰와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을 직접 실천해 가는 과정을 남겨보려고 한다. 성실하게 지속한 언젠가 카피라이팅을 잘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p.s 저와 비슷한 이런 고민과 인고의 과정을 거쳐간 작가님들~ 도움이 될 만한 카피라이팅 관련 책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다음 책은 '평소의 발견'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