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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크족의 최후

by 보리 Bori

잔잔한 일본 영화가 보고 싶었던 어느 일요일 저녁, 친구는 동경가족을 추천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제목인데 검색해서 소개글을 보니 본 적이 없는 듯하다. 동경가족이라는 제목을 듣자 떠오른 몇 개의 장면은 잔잔한 일본의 골목들 뿐, 기억에 섬이 나오는 장면은 없었으며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위기가 닥치는 그런 시끄러운 줄거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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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고 1분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친구야 우리 이거 본거야" 제목을 들었을 때 떠오른 몇 개의 씬 중 하나였던 소박한 골목이 플레이 중이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정확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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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가족의 줄거리는 이렇다. 작은 섬에 살고 있는 노부부가 자식들과 만나기 위해 동경에 상경한다. 의사인 큰아들과 둘째 딸 집에 각각 며칠 머물지만 자식들은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기 바빠 보인다. 어머니는 아끼는 기모노까지 챙겨 와 그것을 입고 자식들과 도쿄 구경을 하리라 기대했겠지만, 노부부는 오다이바의 고급 호텔에서 단둘이 예쁘고 불편한 코스요리를 먹고, 넓고 푹신한 침대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는 하루를 보낸다.


호텔에서 하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딸의 집으로 돌아오지만, 집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었던 딸은 부모님을 거의 내쫓다시피 한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어머니는 집안의 아픈 손가락인 셋째에게 가서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번듯한 직업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아들을 걱정하지만, 착하고 싹싹한 여자 친구를 소개받고 안심한다. 가장 정이 많은 아이지만 세상의 잣대로 보면 한없이 부족한 아들에게 어쩌다 이런 복덩이가 왔나 싶다. 복덩이가 알뜰살뜰 아들을 챙기는 모습에 이날 어머니는 도쿄에 와서 지낸 날들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큰 아들의 집으로 돌아와 어제 셋째의 집에서 너무 좋았다며 도쿄에 오길 잘했다고 활짝 웃고는 갑자기 쓰러지고, 그렇게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다.


섬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고 큰 아들과 둘째 딸은 바로 도쿄의 생활을 위해 황급히 떠나지만, 셋째 아들과 그의 여자 친구는 며칠 더 남아 아버지를 보살핀다. 집안의 문제아라고만 여기던 아들에게 위로받는 아버지..

이렇게 덤덤하게 영화는 끝난다.


보다 보니, 잔잔한 전개 속에 어머니가 너무 갑자기 죽어서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이라고는 그뿐이다. 아마도 그때는 뭔가 공감되는 게 없어서 인상적으로 기억되지 않았겠지...

이번에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바로 남은 아버지는 어떻게 혼자 살아갈까. 무슨 낙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까 하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감독은 아버지 곁에 잠시 더 머무른 셋째를 통해 위로를 전했지만, 나에게는 홀로 남아 쓸쓸한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만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으로 상상해 봤다.

친구와 둘이 살다가 한 명이 먼저 떠나면 어떻게 살아가지? 우리는 자식도 없을 거라 더 외로울 텐데



친구가 없는 딩크족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자식이 있는 노부부와 많이 다를까?

글쎄 영화가 답을 주는 것 같았다. 결국 셋째 아들도 떠나잖아. 결국 나이 들면 어차피 둘만 남아.

30대에 벌써 노부부를 공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 밤, 잠들기 전 문득 뭔가를 생각해내고 호기롭게 다짐한다.

엄마 아빠는 나이 들어 외롭지 않게 해 드려야지...

내가 딩크족이 된 이유는 내리사랑 대신 치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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