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발견 - 유병욱
13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는 날 직장동료가 선물해 줬던 책 ‘평소의 발견’
글쓰기와 카피라이팅에 관심이 없었던 그때의 나는 앞부분을 조금 읽고 남은 부분을 휘리릭 들춰보고는 언젠가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책이라고 카테고리화하여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노란빛의 상콤한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책장 위에 올려 두고 오며 가며 눈길을 주었다.
브랜드마케팅팀으로 이직 후 한참 카피라이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최근 문득 표지 하단의 ‘카피라이터 유병욱’이라는 단어를 발견했고, 그렇게 이 책은 다시 나에게 왔다.
스낵 같은 쉽고 편한 책이라는 마음으로 접근했던 나의 밑줄은 점점 길어지다가 괄호로 바뀌어갔고, 그렇게 가랑비 방울방울에 흠뻑 젖어 마음이 충만해져 책을 덮었다. 필사한 A4 6장의 문장들을 읽고 또 읽으며 정리해보니 유능한 카피라이터의 필승법을 알아내 기쁘기보다 인생 선배로서의 진심 어린 조언과 토닥임에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책을 선물해준 지인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고 힘들어하는 누군가 혹은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소중한 누군가에게 이 책을 나도 선물해 주겠노라 다짐했다.
글쓰기와 카피라이팅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인지 이전에 읽은 이유미 작가의 '문장 수집 생활'과 일맥상통하는 메시지가 많았다.
- 주변을 관찰하고 사람들을 공감하고 그런 일상 속에서 글감을 끊임없이 수집하고 정리하기
-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나의 안목을 기르기
- 쓰고 또 쓰고 많이 쓰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기 (이 부분은 심지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인용한 것까지 같았다.)
그리고 읽고 이해하기 쉬운 글로 썼다는 것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일상 속 경험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표현한 방법이 인상적이어서, 보는 내내 시 같은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었다. (청각으로 받아들이는 음악을 글로 설명하는 부분은 특히나 시적인 표현이 많았다. 책을 읽는 것을 멈추고 음악을 검색해서 들어보게 만들 정도로... )
글 곳곳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배려의 시선이 느껴져 따뜻했고, 본인의 업인 광고를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하는 직업적 자존이 존경스러웠다.
위로와 감동을 받았던 만큼 의미 있는 글로 후기를 남겨보고 싶었는데 마음속에 조금은 복잡하게 얽힌 감흥이 쉽게 글로 표현되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또 읽어봐야 할 것만 같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매일은 뻔하고 지루하지만 그래도 ‘진흙 같은 일상에 박힌 찰나의 보석’ 이 있어 견딜 수 있다. -유병욱-
카피라이터로서의 포인트
관찰하고 공감하기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의 빛나는 눈빛.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가차 없는 포획
어떤 것이든, ‘그럴 수도 있다’ 고 생각하는 관대함.
존중에는 확장의 가능성이 있으나 배척에는 에너지가 담겨있지 않다. 부정은 생각을 한 발짝도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
나의 ‘기존’을 견고하게 하기보다, 영역을 확장하자.
미식가란 맛있는 음식만 먹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문장을 줍는 금맥 같은 장소 : 가사
‘민물장어의 꿈’
사회생활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큰 광고회사에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캠페인을 만드는 카피라이터가 된 내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현실 속의 나에게는 ‘카피라이터’라는 명함 속 다섯 글자 외에는 모든 것이 달랐다. 광고 일을 시작하자마자 멋진 캠페인을 경험하고 있다는 동년배들의 소문을 들을 때마다 작아지던 마음과, 막상 일을 시작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써지지 않던 카피와, 이대로 굳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이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면 나를 깎고 자르고 부서지고 깨어져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 노래의 가사는 그런 내 마을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누구에게나 이런 불안의 시기가 있었음이 위로가 된다.
해석과 관점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놀라움은 예측의 반대 방향에서 태어난다.
원곡이 해석되는 다양한 방식을 보는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재료만큼 중요한 건 해석과 관점.
어느 회의실이든 놀라운 재료는 숨어 있다.
>> 회의실의 놀라운 재료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이런 놀라운 관점!
변하지 않는 가치
시간의 시험을 이기는 것 =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것
무엇이든 본질에 얼마나 닿아있느냐가 중요한 것. 고전의 힘을 생각하자.
나만의 안목으로 표현하기
멋지고 대단한 것들에만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발견하는 안목이 있다면 무엇에서든 심장을 내려 앉히는 매력을 찾을 수 있다.
나의 취향을 깨닫고, 섭렵하고 견고히 하다 시들해지고, 다시 불이 붙고 그렇게 시간의 힘을 통해 다듬어야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안목. 과잉의 시대일수록 안목이다.
가장 감동적인 글은 필자가 말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보여줄 때 나온다.
멋진 것이 떠올랐다면, 멋지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자. 가장 큰 감동은 설명하지 않고 그 상황을 담백하게 보여줄 때 나온다.
치열한 노력
뭘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은 ‘퀄리티는 디테일의 합’으로 바뀐다.
자기만의 무기가 확실하다면 나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기어이! 찾아서 빛나는 사람.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인생 선배의 조언 : 단계별 가랑비 권법
감정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기
노래는 현존하는 최고의 타임머신. 그는 가수가 아니라 나에게 ‘한 시절’이었다.
노래는 나를 가장 빨리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려준다. 당시 내가 존재하던 공간과 결합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꽂혀서 듣던 음악은 그 시절, 내가 스치고 머물던 공간들의 배경음악이 된다. 음악을 듣던 날 보이던 창밖. 그 음악이 흐르던 호프집과 친구들, 그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걷던 길과 그때의 마음 같은 것들이 다 연결된다.
노래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일종의 통로다. 우리는 그 통로에 잠깐씩 귀를 대었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느 시절 우리는 어떤 노래와 너무나 깊숙이 교감한 나머지, 그곳에 우리를 조금 남겨두고 돌아온다. 스티커를 떼어내도 자국이 남는 것처럼. 그래서 훗날 우리가 ‘그 노래’에 다시 닿으면, 통로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
나이 먹은 내가 노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린 나와 이어져 있다는 상상이 흥미롭다.
우울증 처방하기
라이브 앨범 레코딩은 그 가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때문에 곡을 둘러싼 사랑의 에너지가 엄청나고 가수와 관객이 주고받는 사랑이 너무나 명백하게 느껴짐. 사랑의 크기가 큰 만큼 그 에너지도 듣는 이에게 쉽게 전염된다. 기운이 없는 날 응원받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날엔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라이브 앨범으로 들어보자.
가사를 바꿔 부르는 등 그때의 장난을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멤버가 된 것 같은 기분
응원을 받는 방법은 이다지도 간단한 것인지 모른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는 것, 자기 최면이라 해도 뭐 어떤가
보잘것없는 나를 토닥이기
나에게 없는 것, 내게 부족한 것이 어쩌면 내게 힘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간절함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결핍이 명백한 존재가 더 사랑스럽다.
멋 부리지 않고 편안하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우리가 준비한 이야기를 얹어놓고 오자. 어차피 덩크슛이나 레이업슛이나 똑같은 2점인 것을.
비주류가 또 다른 주류가 되는 장면에 희망을 얻는다.
자기다움을 버리지 않고 깊이 파고든 덕분에 어려운 홀로서기의 순간을 잘 이겨냈다.
>> 천재들의 희소성보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이겨내는 스토리가 공감되고 따뜻하다.
자신감 부여하기
우리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쉽게 설레지 않는 법을 배운다.
미리 두근댔다가 실망했던, 그 당혹스러운 낙차를 다시 경험하기 싫어서 기대치를 낮추게 되는 것 아닐지
세상은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
가면을 쓰며 살다 보니 감정의 민낯을 드러낼 일도 드물다.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의 민낯을 볼 수 없어 오해를 하고, 필요 없는 감정 소모를 한다.
>>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남의 시선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는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 만들기
오늘 아침 달린 5킬로미터의 트랙 중 가장 먼 구간은, 침대에서 현관문까지의 거리이다. - 나이키
용기란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 엡브로즈 레드문
10년 뒤 당신은, 당신이 한 것보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 마크 트레인
때론 무책임하게 던져놓기. 미리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기. 할까 말까 고민되는 건 일단 해보기. 두렵고 걱정되지만,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
하나의 점을 찍고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가능한 여러 개의 점을 찍고 내가 행복한 일, 잘할 수 있는 일들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 중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정공법으로! - 꾸준한 노력에는 답이 없다.
헤밍웨이도 적절한 말을 찾기 위해 서른아홉 번을 고쳤다. 또한 매일매일 일정을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에만 글을 쓴다.
신기한 것은 오르한 파묵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천재성과 낭만의 영역이라고 느껴지던 글쓰기가, 실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매일의 꾸준함에 빚지고 있었다.
인터뷰에 명언이 많은 건 그들이 달변 이어서일까? 머리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만들어낸 문장보다 훨씬 힘 있는, 시간이 다듬어놓은 생각들
>> 역시 엉덩이의 힘,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감사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른 이들은 서로 쉽게 이야기가 통한다. : 기본. 자존. 몰입. 동기부여. 디테일
책임감 부여하기
어른이 나이 어린 스승을 기꺼이 곁에 둘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성장할 수 있다.
어른들은 새로운 지식을 빨아들이는 능력은 부족해도, 이를 종합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더 낫다.
지식 말고 지혜라는 무기도 있고, 표면 말고 흐름을 보는 능력도 있다.
묻고 의지하고, 판단하고, 길을 열여 주라!
영역을 불문하고 인생엔 오직 시간을 투입하고 기다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변환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숙성의 시간
시간의 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을 주목하자
인생을 걸고 싶은 목표를 발견하고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조롱하고 자조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몰두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시간의 힘으로 얻은 것들이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덧, 음악과 관련한 문장 수집
술과 안주에도 궁합이 있듯이, 날씨와 음악의 바람직한 조합은 시작하는 계절을 마음껏 만끽하게 한다.
표현 : 음악은 플레이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귀를 압도한다. 트럼펫이 짧게 쏘아붙이고, 콘트라베이스가 비트를 깔고, 잠깐 퍼커션이 등장해 앞으로 심심치 않게 나타날 것을 암시하고는, 이내 브라스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중략) 엔딩 직전에 들리는 색소폰 솔로는, 하늘로 폭죽을 쏘아 올리는 느낌이랄까?
어두운 하늘에서 첫 눈송이가 떨어지는 것처럼, 또는 얼음이 툭 깨지는 것 같은 피아노 소리
쓸쓸한 마음을 위로하는 것은 또 다른 쓸쓸함
견뎌낸 자의 단단함, 그리고 단단한 자의 여유로움
단정하게 꾹꾹 눌러서 연주한다. 차갑고 단정하며, 강요하지 않는다.
쓸쓸하지만 따뜻한, 알 수 없는 위안을 주는 곡
여백이 많은 연주 : 누군가 나를 천천히 다독여주며, 복잡했던 머릿속 매듭을 하나씩 풀어주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