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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노마드씨 울릉도에서 겨우살이 어때요

울릉도 겨우살이 프로젝트 - 기획/ 준비 편

by 보리 Bori

호텔 그리고 울릉도


이번 글의 이해를 위해 호텔 운영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호텔의 장밋빛을 보는 경우가 많으니 공급자 관점에서의 어려움 위주로..


호텔은 하드웨어에 서비스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산업으로 부동산업과 서비스업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먼저 부동산업의 측면!

건물을 짓고 나면, 리모델링이나 증축과 같은 특수 상황을 맞기 전까지는 객실 수의 조정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공급의 제약 때문에 수요가 많아도 정해진 객실 수 이상으로 판매할 수 없으며, 수요가 적어서 안 팔리는 객실의 매출은 사라져 버린다. 상품처럼 재고로 남겨두었다가 팔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호텔은 수요가 높은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최대한 비싸게 팔아야 하고 수요가 낮을 때는 가격을 낮춰서라도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서비스업의 측면!

객실, 레스토랑, 카페, 수영장 등 목적에 맞는 서비스 제공을 위해 프런트, 하우스키핑, 조리, 시설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또한 24시간 유지되어야 하는 서비스도 많아 교대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객실 수가 많건 적건 부대시설에 따라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력의 규모라는 것이 존재한다. 체인호텔의 경우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독립호텔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유연성을 헷지 할 방법이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마케팅을 담당했던 호텔 두 곳은 모두 독립호텔이었다. 그중에 코스모스리조트는 객실 수 10개 미만의 레저 성향이 강한 리조트이고,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교통여건의 울릉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설명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울릉도!


울릉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까지는 작은 제주도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관광에 관련한 컨디션은 예상과 매우 다르다. 울릉도는 아직까지도 여객선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으며 그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바람에 따라 결항률도 높고, 심지어 겨울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배가 뜰까 말까 할 정도이다. (대부분의 주민들도 12월부터 2월까지는 육지로 나와서 살 정도)




겨우살이 프로젝트 기획의 시작


이러한 이유로 리조트는 겨울 2달 동안 휴장을 해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로운 숙제가 떨어졌다. 21년부터는 휴장기 없이 겨울에도 운영하도록!


겨울의 울릉도라..


2년간 울릉도를 오가며 겨울에 울릉도를 방문했던 적이 두 번, 그중 한 번은 결항으로 눈 오는 울릉도에 갇혔던 적이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하얀 나무터널을 빠져나와 문득 고개 들어 파란 하늘을 마주했는데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서 바라보게 하는 풍경이었다. 출장 일정의 이틀을 늘어지게 한 야속한 하늘은 잠시 잊고 파랗게 평화로운 얼굴을 한 하늘을 고이 사진으로 찍어왔더랬다. 서른 번쯤의 울릉도 출장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그때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겨울의 울릉도 영 답이 없진 않겠구나..’


출장 중 고립된 겨울의 울릉도



눈과 고립을 즐길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자연 속에 파묻힌 조용한 숲 속의 작은 집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캠퍼? 그리고 눈에 덮인 양떼목장의 사진을 찍어오겠다며 눈 오는 새벽 운전을 하고 대관령을 가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 투숙이 가능한 사람은 어떨까?

나는 ‘디지털노마드’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해보기로 했다.

겨우살이 프로젝트 기획안 첫 번째 페이지


울릉도 그리고 리조트에 머물면서 겨울 산행도 하고, 일몰도 보고, 함께 머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 모습을 글로 그림으로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남기는 울릉도 겨우살이 프로젝트!

기획안 보고가 잘 끝나 예산도 다행히 계획한 만큼 확보하고, 코스모스리조트 운영과 마케팅을 담당했던 친구들(=직장 후배) 3명과 함께 겨우살이 준비를 시작했다. 유명 크리에이터를 섭외하여 진행하기엔 일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부담이었고, 현실적으로 예산의 제약도 있었다.

리조트를 소개한 적이 있었던 스테이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를 통해 울릉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크리에이터 5~6팀을 모집하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스테이폴리오에서 홍보를 적극 도와주셨다.


스테이폴리오 모집 공고


겨우살이 프로젝트 사전 준비


막상 모집을 앞두고는 신청이 안 들어오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오픈 첫날부터 예상외의 엄청난 반응으로 총 524명의 모든 신청자분들이 신청해 주셨다. 신청서를 빠짐없이 읽고 SNS도 체크하고 통화도 해보고, 3 배수를 우선 선별했다. 사전 미팅을 통해 직접 얼굴을 보며 겨우살이와 울릉도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드리고 개별 면담으로 적극적인 참여 의지와 오픈 마인드가 느껴지는 사진작가 커플, 캠핑 유튜버, 여행작가, 다큐멘터리 pd, 요리 블로거 등 최종 10팀을 선정했다.

한 달 동안 우리는 며칠이 될지 모르는 겨우살이의 일정과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체크리스트

- 카페 아지트화(벤치마크 순례길의 알베르게) : 아늑한 분위기 조성 위한 아이템들 폴라로이드, 포토프린터, 페브릭류 제작

- 겨울 산행을 위해 등산학교 선생님 섭외

- 등산의류와 용품 협찬 with 코오롱스포츠

- 일회용품 대신 제공할 스테이 용품 with 에피그램 : 손수건, 에코백 등

- 드론 촬영 허가 및 등록 군청과 협의

- 사전 서프라이즈 선물 : 뱃멀미 방지키트 - 수면안대, 목베개, 멀미약, 비타민 등

- 참여자들과의 겨우살이 스토리 결과물 협의 : 영상 콘텐츠, 사진/사진엽서, 굿즈 제작

- 리조트 직원분들 근무 스케줄 조정

- 셰프님과 겨우살이 식단 (feat. 울릉도 식재료)

- 참여자들 알레르기 체크, 여행자 보험, 개인정보수집 동의



울릉도의 겨울을 감안한 추가 체크리스트


- 일정!!!

IT기술의 발전으로 자기 전에 주문하면 새벽에 배송이 와있는 최첨단 시대와 달리 울릉도는 한 20년쯤 과거로 돌아간 세상이라 보면 된다. 출입하는 방법은 유일하게 여객선 밖에 없으며 포항, 강릉, 묵호에서 각각 하루 한번 아침 7시에서 10시 사이에 육지에서 울릉도로 출발하고, 오후에 울릉도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온다. 여객선을 운항하는 선사가 세 곳 정도 있지만, 겨울에는 유일하게 한 곳만이 운영한다. 결국 겨울에 울릉도를 들어가는 배는 하루 딱 한 척이 있는 셈이고, 이마저도 운항 여부는 하루 전날 결정되고 당일 갑자기 변경될 수도 결항될 수도 있다.

아래의 케이스별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case 1. 출발하는 배 시간이 9시 이전으로 당겨지게 되면 전날 오후에 미리 포항에 내려가 1박을 해야 한다. (KTX 첫 차로 출발해도 8시 반에 도착하니까)

case 2. 출발과 도착하는 날짜 모두 앞뒤로 2~3일 변경될 수 있다. (참여자에게 공지 또 공지!)

case 3. 출도착 날짜의 유동성에 따라 일정은 최소 4박 5일짜리부터 9박 10일까지의 계획이 필요하다.


참여자들을 모집할 때 적극적인 참여 의지와 오픈 마인드를 중요하게 고려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일정을 예측할 수 없다는!


- 울릉도 주요 관광지 출입 가능 여부 & 사전답사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울릉도의 12월부터 2월은 주민들도 빠져나가는 기간이고, 관광객의 출입도 거의 없기 때문에 주요 관광지들도 휴업에 들어간다. 또 거센 겨울바람에 의해 매일 운영 여부가 결정되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까마득한 경사를 넘어가는 모노레일이나 긴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관음도 같은 곳들..

우리가 방문하고자 하는 곳들이 운영을 하는지, 안전하게 출입이 가능한지 미리 체크가 필요했다. 울릉도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겨울의 그곳을 상상하니 컨디션이 걱정되었다. 일출을 보러 갈 전망대가 눈이 오면 일반인들이 안전하게 올라갈만한 길인지, 가로등은 설치되어 있는지, 손전등은 필요 없는지 등등

1팀이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비수기를 활용해 공사 중인 구간도 있어 일정에서 조정하고, 직접 새벽에 다녀와야 하는 곳들은 다른 분들의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동선 별 식사가 필요한 식당은 겨우살이 진행 기간 내 운영하시는지 미리 확인하고 예약해 두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사장님들이 많으셔서 당일에 물론 다시 체크해야 하겠지만)


- 폭설이 오면


겨우살이의 가장 큰 기대 포인트는 '눈'이지만 이것도 과유불급. 이틀 이상 폭설이라도 내리면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들의 컨디션이 달라진다. 인원수가 많고 운전이 가능한 사람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스타렉스 두대로 움직이면 좋겠지만 스타렉스가 눈에 취약해 결국 리스크를 줄여보고자 스타렉스 1대와 SUV 2대로 결정하고 최악의 경우 눈이 오면 SUV 2대가 왔다 갔다 하며 1팀/2팀의 체제로 움직이기로 했다. 매일 이동 시에 날씨의 변수를 넣어 일정 추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스파크 타이어가 허용되는 곳이다. 우리가 눈길에 임시적으로 장착하는 체인과 달리 스파크 타이어는 타이어 자체에 뾰족한 징이 박혀있다. 그래서 렌트 시 타이어 종류도 미리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타이어 교체가 가능한 정비소를 미리 섭외해두고 눈이 오면 우리가 따로 타이어 교체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또 이동 시 시나리오가 추가되었다.


case 1. 눈 안 올 시 스타렉스 1대 + SUV 2대로 이동

case 2. 눈 많이 오면 스타렉스 스파크 타이어 교체 후 이동

case 3. 스타렉스 이동 불가시 SUV 두 번 왕복으로 2팀 체제 전환


예측하기 어렵고 경우의 수도 너무 많은 케이스별 준비를 하는 것이 역시 울릉도 다운 프로젝트임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2의 몇 제곱이 될지 예측도 안 되는 경우의 수를 대비한 시나리오가 다 무슨 소용 인가 포기 상태에 이르렀을 때쯤, 우리는 변화무쌍한 겨울바다의 기상예보를 공유하면서 그렇게 울릉도로 떠날 날을 하루하루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글 EP4. 겨우살이를 앞두고 이직을 결심하다.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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