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 후 24시간 동안의 생각의 흐름을 기록
주의 : 스포가 담겨있습니다.
밴드부 선생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연주를 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꿈꾸는 조 가드너.
하고 싶은 일을 꿈꾸며 계속해서 치열하게 도전하는 나와 겹쳐 보였다.
학교에서 정규직이 되었다는 소식에는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싶었던 그가 우연히 오디션에 통과하게 되어 아티스트로서의 희망을 눈 앞에 두게 된다. 그는 I got the gig! 을 외치며 인생 최고의 순간을 폴짝거린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긱을 통해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려는 그가, 다시 한번 사이드 프로젝트를 기웃거리는 나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도 조금만 더 가보면 곧 꿈에 그리던 그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폴짝거리다가 맨홀에 빠져 사후세계를 눈앞에 두게 되고, 그는 자신의 연주를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위해 죽음을 거스른다. 그리고 좀처럼 자신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저 정규직이 최고라는 엄마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전하고 공감받는 데 성공한다.
그는 결국 꿈꾸던 무대를 만들어낸다. 간절함의 힘이었으리라. 스스로 만족하는 연주를 마친 땀방울에 반짝거리던 그 얼굴의 표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인생 최고의 시간을 경험한 그는 그날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곧 공허해한다. 이어지는 이야기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물었어.
“전 바다라는 엄청난 것을 찾고 있어요.”
“바다? 지금 네가 있는 이곳이 바로 바다란다.”
“여기는 그냥 물이에요.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
순간 조 가드너의 그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허황된 꿈이라는 건가? 그저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건가?
무엇을 의도한 대사인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열심히 꿈꾸고 성취한 그 과정을 부정당한 느낌이어서 잠시 불편했다. 열심히 골인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누가 발을 걸어 꼬구라진 그런 기분이었다.
'설마.. 이 영화는 made by pixar야. 나의 오해일 거야’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아갔다.
지구로 가기를 거부한 영혼 22가 지구에 와서 눈이 반짝였던 순간들, 눈이 오버랩되듯 조 가드너가 인지하지 못한 그의 반짝거렸던 일상들…
나도 함께 눈을 크게 뜨고 그 별 같은 순간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소울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감동이 출렁일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찝찝했다. 그는 도대체 왜 그토록 꿈꾸던 아티스트가 되어 완벽한 연주를 했는데 공허함을 느꼈을까?
집에 와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깨달았다.
아마도 조 가드너가 느낀 공허함의 원인은 아티스트라는 직업 너머에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깨달음 없이, 아티스트가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직업이라는 하나의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지만 일단 나는 그 공허함마저 부럽다. 계속 다음의 무언가 그다음의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다가오는 문들 열고 뛰어가고 있지만 아직 나는 공허함을 느낄 정도로 불태워본 경험이 없는 듯 느껴져서..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을 위해 내가 지금 달려가는 그 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추구하는 회사/직업은 과연 수단을 넘어선 것인지
회사와 직업에의 몰입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일상에서 그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순간 신기하게도 이틀 전 받았던 마음속에 걸려있던 질문이 함께 떠올랐다.
“상아님의 삶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어렴풋이 대충 이러이러한 것 같은데 정도의 안갯속에 가려져 잘 안 보이는 듯한 느낌이라 좀 더 명확히 그 무언가를 찾는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잘 알아가는 과정!
오늘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최근 몇 달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출근할 생각에 우울하고 회피하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행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 친구와 서로 자주 나누었던 질문이 있다.
“한 달 후 죽는다면 남는 시간 동안 뭘 하며 살고 싶어?”
처음엔 내가 가진 돈을 모두 펑펑 쓰며 흥청망청 살아볼까 싶었다. 근데 그렇게 뭔가를 사모아봤자 무덤에 가져가지도 못할 텐데 무슨 소용. 그래서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볼까도 생각했다. 그게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어차피 죽을 거 그냥 일찍 죽는 건 어떤가 싶은 생각도 했다.
그러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책 읽고 여행 다니면서 많이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그 감정을 내 표현방식으로 남기고 싶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원 없이.”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구나.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어제의 나보다 계속 나아가는 것.
그럼 이제 질문을 바꾸어보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책 읽고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브이로그도 만들고 글도 쓰고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돈을 벌어먹고 살 것인가? 재미와 의미가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에서 나의 가치관에 공감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일며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하고, 나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답게 살고 내일 죽어도 억울하지 않게 미련 없이 오늘을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것. 그리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인 듯하다.
사실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내가 느낀 것과는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영혼 22가 핑그르르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을 보고 불꽃을 만들어낸 것처럼 뛰어난 재능과 성취만이 불꽃은 아니라는 이야기. 지금 여기의 삶을 즐기라는 위로를 전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메시지는 조 가드너처럼 어느 정점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하루키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조건으로 철저한 자기 절제와 통제를 전제로 했던 것처럼...
평점이 9.4에 육박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감명과 위로를 받은 영화인데 내가 느낀 이런 감정은 의도한 메시지와 상반된 것 같아 찝찝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조 가드너가 문을 열고 나오며 “오늘의 인생을 즐기러 간다” 는 류의 대사를 하는데 나는 순간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에서 쏟은 눈물 너머의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이 답을 찾으러 조만간 다시 한번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스스로도 생각의 정리가 안된 상태이다 보니 글이 두서없지만, 이때의 날 것 같은 느낌을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조금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이 글과 함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