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유학 와서 처음 맞는 여름 방학이었다. 황금 같은 3개월, 좀 덥지만 직장 생활하는 동안 누릴 수 없던 긴긴 여정으로 여행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번 여행은 최대한 멀리 동유럽과 아드리아해까지 주요 몇 나라 주요 몇 개 도시를 목적지로 정하고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여름의 고온을 피하기 위해 좀 늦은 8월 중순에 출발 9월 초에 돌아오는 약 25일간의 일정으로 정하고 하루 이동거리 5백-6백 킬로미터 내에서 가보고 싶은 도시들을 선택하고 도시들 간의 이동 거리를 고려하여 하루씩 일정을 짜고 여행지 도시에서 머물 숙소를 검색해 예약하고, 다음 이동거리와 또 방문할 도시를 정하고 또 숙소를 예약하고, 그렇게 부**컴에서 하루 또는 최대 3일까지 아파트, 호텔 등 다양한 옵션으로 24일간의 숙소를 예약했고, 각 도시들의 핫플레이스들을 검색해 저장해두고, 여행 계획을 마무리했다.
남편과 설왕설래하며 여행 경로를 추가했다가 수정했다가 넣었다가 뺐다가 다시 넣고,,, 수정과 수정을 거듭하여, 최종 선정한 여행지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태리 서유럽 3국과 체코, 폴란드,헝가리동유럽 3국,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 발칸 3국, 총 9개국에 16개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고, 25일간 약 8천여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플랜이 마련되었다.
그때 자가 차는 구입하지 않고 여행 때는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프리미엄급 차량을 렌트하고 다녀서 이번 여행에도 내비게이션 필수에 장거리 장기간을 고려해 여타 옵션을 갖춘 안락하고 넓고 튼튼한 르* 매건 블랙 프리미엄으로 렌트카를 주문했다. 기본 물품들을 쇼핑하고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남편은 여행 다니면서 혹시 더 묵고 싶거나 맘이 바뀔 수 있으니 숙소를 다 예약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나는 숙소, 교통편, 행선지는 꼭 정해야 한다. 기본적 여건이 정해진 범위 내에서 출발해야 안심도 되고 가는 동안 마음 비우고 거리 풍경도 즐기며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편한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어서 이 세 가지는 항상 정하고 출발한다. 물론 여행마다 예약한 곳보다 더 맘에 드는 좋은 곳이 있어 잠시 고민하는 순간들이 언제나 있지만, 그 고민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기에 기꺼이 아쉬움을 감수한다. 결혼해도 멋있어 보이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건 어쩔 수 없는 갈등으로 퉁치고,,
차에 오일을 풀로 채우고, 프랑스에서는 차안에 질레 존, gilet jaune (조끼 노랑) 근래 이 조끼 입고 데모한 바로 그 야광 조끼는 탑승자 수대로 차 안에 반드시 비치해야 해서 렌트카에 있는 한 개 외에 추가로 1개를 구입했다. 여름 방학이면 리옹은 온통 오래된 거리나 도로 공사 시즌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맵앱에서 안내하는 도로들이 중간중간 공사로 막혀있어 같은 길을 몇 번 돌고 돌다 가까스로 고속도로 진입하느라 진땀 빼고,,,
루체른
첫 목적지는 알프스 산자락의 보석 스위스 루체른이었다. Luzern, Lucern, 알프스의 고요와 정감을 머금은 듯. 어스름 해 기우는 오후에 도착한 루체른은 조용하고 아늑한 알프스에 숨겨진 비밀의 정원 같았다. 현실에서 만났으나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듯 꿈속의 세계에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세상 속의 내가 이 곳에 들어와서 평화로운 적막을 깨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이방인의 예의를 갖추어 그 고요를 방해하지 않도록,,,
숙소는 도로 이름이 같은데 다른 두 도로로 갈라져 있어서 한참을 찾아 헤맸다. 결국 길가던 현지인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주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옛 석조 건물을 아파트로 리노베이션 하여 무늬는 중세풍인데 내부는 작은 현대식 아파트 구조였고 우리 숙소는 제일 위층이었는데, 일어서면 키 닿을 듯 다락방 같이 천정이 낮았다. 이른 아침 높은 창에서 바라본 루체른은 알프스의 이슬에 촉촉이 젖어 모락모락 산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물 1층엔 중국 식당이 있었고 칼칼한 중국 요리로 여행의 피로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