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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Jan 05. 2022

착각으로부터 자유

무지와 착각은 한쌍으로 다닌다.


"On a certain sabbath Jesus went into the synagogue and taught, and there was a man there whose right hand was withered.


("안식일 날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고 있었고, 거기에는 오른손을 쓸 수 없는 남자가 있었다.)


The scribes and the Pharisees watched him closely to see if he would cure on the sabbath so that they might discover a reason to accuse him. But he realized their intentions…" Luke 6:6–8


(율법학자들과 리새이들은 예수를 고발할 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예수안식일에 남자를 치유하는지를 보려고 가까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루카 6,6-8>


"Jesus had a gift. Of course, He had every good gift to perfection. But in today’s Gospel, we see one of  Jesus’ gifts made manifest. Namely, Jesus was able to realize the intentions of those He daily encountered.


("예수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온전하게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의 한 가지 능력이 드러나는데,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When Jesus perceived the ill intentions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He used that knowledge to manifest their intentions. They intended to find a reason to accuse Jesus, so He gave them one.


(예수는 그 능력으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이들의 악의적인 의도를 파악하고 그들의 의도가 드러나게 했다. 예수를 고발할 이유를 찾는 그들에게 예수는 그것을 주었다.)


Jesus cured a man with a withered hand on the Sabbath, and the scribes and Pharisees “became enraged and discussed together what they might do to Jesus.” They thought miracles were violations of the law of Sabbath rest.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치유했고, 그들은 분노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였다. 그들은 기적이 안식일 휴식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Jesus knew they would apply their twisted logic to this miraculous healing, and He knew they would become enraged at Him on account of their envy.


(예수는 그들이 기적의 치유에 대해서 왜곡된 논리를 적용하며, 예수에 대한 시기심으로 분노할 것을 알고 있었다.)


So, in a sense, Jesus provoked them so that that which was in their hearts would come forth for them to see.


 (사실, 예수는 그들을 자극해서 그들 마음속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All of our interior intentions and thoughts are known by God and must become manifest to us in the presence of God.


(인간 내면의 모든 의도와 생각은 하느님에 의해서 모두 알려지며, 하느님 현존에서 인간의 모든 생각은 드러나야만 한다.)


By provoking the scribes and Pharisees in charity, Jesus forces them to face that which was within them.


(예수는 그들을 자비로서 자극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내면의 의도를 대면하도록 이끌었다.)


They had to choose to either continue down the path of envy or to realize the foolishness of their interior thoughts.


(그들은 시기에 눈먼 그 길을 계속 갈 것인지, 또는 그들 내면의 어리석은 생각을 깨달을 것인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Sadly, for the scribes and Pharisees, it appears that many of them became more hardened in their sin. But this was a choice only they could make."


(슬프게도 그들은 그들의 죄를 더욱 굳게 하는 것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결정한 선택이다.")


<Perceiving the Intentions of Others>

September 6, 2021,

Catholic Daily Reflections




"당하고 사는 사람은 늘 비슷하게 행동한다."

 -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착각"(, illusion)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실제와 다르게 인지하는 "감각적인 착각"과 사실이나 생각을 비정상적으로 해석하거나 틀리게 인식하는 "개념적 착각"이 있다고 한다.


"눈으로 언뜻 보고 아 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어" 이것이 감각적 착각이라면, "그 규정이 이 상황에도 적용될 거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어."는 개념적 착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의 양이 적고 그 내용이 세밀하지 못할수록 착각의 빈도, 강도, 지속도가 더 커진다. 시험 전에 대충대충 공부하고 시험 보게 되면 공부했던 내용들이 뒤섞여서 혼동이 오는 이치와 같다.



착각은 때로 핑크빛 환상으로 다가왔다가 칠흑 같은 고통을 주고 사라지기도 한다. 쉽고 가볍거나 사라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착각의 결말은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데 어쩌다 한 착각으로 장기간 영향을 받는 상황은 그 파편을 계속 맞아야 하는 전쟁터와 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예기치 않은 일들은 그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또는 미처 대비하지 못해서 섣부른 판단으로 실패와 고난을 안겨주기도 한다.



예수님은 타인의 의도를 드러나게 하는 능력이 있지만, 평범한 우리 인간은 타인의 내면 속에, 특히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고도로 포장된 의도라면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삶에서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해도 이전의 경험이 새로운 상황을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도 간혹 친절이나 호의적인 태도가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익한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무덤덤한 관계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숨겨진 의도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들은 다 준비하고 계획하고 다가오는 것이니, 친절도 호의도 그래서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친절이, 이 호의가, 이 제안이 지금, 이 순간, 내게, 상황에서 타당한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가끔 착각 속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뭔가 이룰 수 있을  같기도 하고, 또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같기도 하고, 또 뭔가 그럴싸한 것이 된  같기도 하고, 명품을 소유하면 삶이 자신이 명품처럼 보일 거라는 환상처럼,


순식간에 만족을 채워줄  같 달콤한 유혹들은 여기저기 널려있고 그 착각에 점령당하면 그것은 매우 쉽고 편리한 도피처가 . 


사람이 명품이 되는 길은 너무 어려워서일까, 쉽게 얻은 것은 금방 날아가는데... 편하게 얻으려고 할수록 그 함정은 깊다.


진실을 파고들지 않으면,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이리저리 앞뒤로 살피지 않으면 또 다른 착각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그 착각은 나를 조종할 수도 있고 그 착각에 맞춰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



오늘은 어제의 복사판이 아니다. 매일이 새로운 도전의 날이다. 어제의 나는 어제로 사라졌다. 오늘 나는 새로 존재하는 인간이다. 새로 존재하기 위해서 오늘 새로운 과제를 찾아야 한다.


새로 배워야 할 것을 찾아내고 무언가 새롭게 배워야 한다. 어제까지 몰랐던 무언가를 오늘은 알아야 한다. 어제보다 더 배운 것이 없는 오늘의 나라면 어제의 죽은 내가 그냥 생명 없이 버티고 있는 거다.


일상이 늘 그렇고 그런 듯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이다. 매일매일 성장해야 할 우리의 고귀한 권리를 방치하는 것이 태만이다. 인간은 성장할 때 가장 아름답다.



머릿속에 숨어있는 비현실적인 환상은 없을까?  나의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망상이 내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건 아닐까?


착각은 여러 모양으로 다른 옷을 입고 우리 의식 속에, 무의식 속에 살고 있다. 착각은 불행을 안겨주는 가장 조용한 인생 방해꾼이다. 착각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은 무지를 탈출하는 것이다.


매일 무언가 새로 배우지 않으면 착각은 누구에게나 슬그머니 파고들어 꿈인 것처럼, 희망인 것처럼, 원대한 포부인 것처럼 행세하며 우리의 정신을 시들게 다. 그리고 한번 맛 들인 착각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 습관이 되기도 한다.



매일 꾸준히 삶의 시간을 배움으로 채우면, 육신의 허기도 함께 채워진다. 배우는 일에 부지런하면 체중 관리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지방이 쌓이도록 늘어지고 지루한 시간들이 결코 있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배우고 이해하고 깨우치고 새로운 통찰을 얻으려는 매일의 공부가 이 요망한 악습에서 우리를 지켜 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 이미지 모두,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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