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레인
5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가계부를 10개월째 쓰고 있습니다.
사실 가계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여러 번 시도도 했습니다.
가계부를 바꿔가며 다시 써보려 했던 걸 보면
‘해야 한다’는 마음만큼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쉽지 않았습니다.
번번이 쓰다 멈췄고,
3~4개월을 넘긴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가계부는 뭐가 달랐을까요.
왜 이번에는 10개월을 넘길 수 있었을까요.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는
기억에 의존해 쓰던 가계부였습니다.
며칠만 지나도
얼마를 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고,
생각나는 대로 적다 보니 빠지는 지출이 생겼습니다.
그럴수록 가계부는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가계부를 펼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지출 항목을 나누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돈이 식비인지, 생활비인지,
충동소비인지, 자기 계발비인지 고민하다 보면
'꾸준히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돌이켜보면 게으름이 아니라
계속해서 판단해야 했던 피로감이었습니다.
가계부의 목적이 정확한 분류가 아니라
돈의 흐름을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한 달 결산에 대한 부담이었습니다.
결산을 하려면
표를 정리하고 분석을 해야 할 것 같았고,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자기반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달도 잘 못했네.’
그렇게 스스로를 평가하다 보니
결산은 점점 미뤄졌고 결국 건너뛰게 되었습니다.
가계부를 적는 의미가 없어지게 됐죠.
결산은 평가가 아니라
내 가정의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번 가계부를 쓰면서
저는 관점을 조금 바꿨습니다.
돈을 모으는 방법은
벌거나 줄이거나입니다
지금의 저는
우선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계부를 꺼냈습니다.
가장 먼저 바꾼 건
그날 쓴 돈은 그날 기록하는 습관이었습니다.
자기 전 5분,
하루의 지출을 적는 시간만큼은
비워두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두 번째는
항목을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고정비, 변동비, 비정기지출로 크게 나누고
매일 적어야 할 항목은 최소화했습니다.
식비와 생활비로 항목이 줄어들자
가계부를 펼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어요.
마지막으로
한 달 결산은 한 줄로 남겼습니다.
지출 총액도 중요했지만 저의 한 줄은
그달, 돈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지였습니다.
불안했는지, 감정적으로 소비했는지
그 느낌을 적었습니다.
그 한 줄이 다음 달에도 가계부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소비에 대한 제 생각을 기록했기에 감정이 남았고
다음의 지출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10개월 동안 가계부를 쓰며 저만의 기준이 생겼고
재정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웠던 자산현황도 조금씩 파악이 됐어요.
3인 가족으로서
식비를 조정하고 저축이 늘어나는 과정을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가계부를 2~3개월쯤 쓰다 멈춘다고 합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바쁨에 밀리고, 부담이 되어 놓아 버리는 거죠.
혹시 가계부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면
왜 멈췄는지부터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밀렸기 때문인지,
구조가 복잡했는지,
부담이 컸는지를요.
그 이유를 이해하면
나에게 맞는 방식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10개월 동안의 기록을 바탕으로 꾸준히 가계부를 써보려 합니다.
이번에는 어떤 기록이 나의 깨달음으로 이어질지 기대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