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레인
신호등에 서 있었다.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짧은 거리지만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으로 동년배로 보이는 60대의 아주머니 세 분이 멈춰 섰다.
나처럼 마트에서 장을 봤는지 모두 양손에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아유 지겨워. 이놈의 밥은 언제쯤 안 하려나..."
다른 아주머니가
"우리가 우리 먹으려고 하나.. 죽으나 사나 집밥만 찾는 영감탱이 때문이지"
마지막 아주머니가
"아니 그러니까... 나는 안 먹어도 되는데"
하면서 쿡쿡 웃으셨다.
곁에서 소리만 듣고 있었기에 누군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분이 말을 하셨다.
"나는 이거 코다리 좋아하지도 않아!"
"아유~~ 우린 하는 김에 먹는 거지. 밥 안 하면 나는 사서 먹을 거야"
"언니는 뭐 좋아하는데?"
"나? 나야 남이 해준 밥이면 다 맛있지~~"
"깔깔깔 그렇지 우리 나이 되면 남이 해준 밥이 젤 맛나지
에고... 언제쯤 그렇게 살까?"
그 사이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세 분이 나란히 건너가셨다.
건너면서도 수다가 즐거운지 남 신경 안 쓰는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도 음식 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
나도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는 사람이다.
나 하나만 놓고 보자면 신경 쓸 일이 없는데 식구들 끼니를 책임지는 주부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요리다.
집밥을 하면서도 시간에 쫓기듯 결과물을 내놓는 게 요리다
음식을 하는 과정을 어떻게 하면 간단하게 초스피드로 할 수 있는지만을 고민한다.
요리하는 동안의 나는 거기에 있지 않고 끝낸 후련함 뒤에 먼저 가 있곤 한다.
그랬던 내가 며칠 전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편안함과 불편함의 기준이란 것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자가 알래스카 오지에서 순록사냥을 하는 과정을 읽으며 불현듯 떠올랐다.
"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시간을 내서 달리는 것만이 자기 계발은 아니구나"
극한의 추위와 배고픔에서 사냥만이 굶주린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어쩔 도리 없이 사냥을 해야만 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는 행위.
나는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순간적으로 내가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는 데에 더없이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잊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청소를 게을리하고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음식의 가치를 소홀히 한 게 부끄러웠다. 자기를 계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장'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했다.
매일 머무는 공간을 단정히 하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기 계발의 시작이다.
책을 읽으며 어지러운 집을 모른 척 눈 감았고 글을 쓴다고 간단히 인스턴트로 식사를 때우듯이 먹은 날이 많았다. 그러고는 건강을 위해 천변을 달렸다.
나를 위한 다고 한 일들 대신 뒤로 미루어진 일들은 가치가 없었던 걸까. 가장 바탕이 되어야 할 일들을 나는 왜 무시하고 푸대접을 했을까
문득 존재의 의미를 묻는 수행자에게 "네가 먹은 그릇을 닦아라"라고 했다는 선사의 말이 떠올랐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내 존재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통찰로 들린다.
간소한 찬이라도 음식을 할 때만큼은 그때의 나에게 집중해야겠다. 오랜 습관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재료를 대하고 먹을 때는 맛과 향을 최대한 곱씹으며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려고 한다.
그것이 생명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이며 편리함을 가진 자가 나누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익숙해서 불편함이라 여겼던 기본을 다시 편리함으로 느낄 때까지 노력이 필요하겠다.
이제 나는 남이 해준 밥을 기대하지 않겠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나 스스로 내 끼니를 챙기는 자기 계발 안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