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

by 세레인

by 세레인


출근길이었어요.


제 앞 50M 정도에서 걸어가고 있는 70대 어르신이 보였어요.

한 손에는 예쁜 핑크 가방을 들고 목적이 있는 듯한 발걸음으로 부지런히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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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른편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급히 그 방향으로 움직이시더니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마스크를 주우시더라고요.


'아! 학교 보안관이신가?'


얕은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스크를 그대로 들고 또 부지런히 걸어가시더군요.


아 아니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화단에 누군가 마시다가 버린 종이컵을 보시고는 바로 집어서 또 들고 가십니다.


두 번째 같은 모습을 보고 아 쓰레기를 줍고 계셨구나 하고 알 수 있었어요

그런 행동을 직업적으로만 보고 오해하다니 제가 부끄러웠어요


그러고는 걸어가시면서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작은 쓰레기봉투를 발견하시고 거기에 버리셨습니다.


제가 출근하는 이른 시간에는 청소를 하시는 환경미화원분을 자주 봅니다. 그분들 덕에 깨끗한 거리를 볼 수 있지만 간혹 그 사이 또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피곤한 아침이라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마셨을 수도 있고 어느 누군가 훌렁 벗어버린 마스크가 바람에 날려 학교 문 앞까지 올 수도 있겠지요. 그런 자잘한 쓰레기는 환경미화원 말고 누가 신경이나 쓰던가요. 저를 포함해서요.


그런데 그분은 마치 집안의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처럼 망설임 없이 움직이셨어요. 맨손이었지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마치 내가 버린 쓰레기를 주운 것처럼.






또 다른 날, 딸과 외출해서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어요.

영화를 보기 위해 나선 길이었는데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수하게 화장도 안 하고 편한 차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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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모녀 앞에서 멋쟁이 할머님 한 분이 걸어가고 계셨어요.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70대로 보였는데 언뜻 봐도 꽤나 감각적으로 보였습니다.


보통의 어르신들이 입지 않는 긴 베이지색 카디건을 멋들어지게 입으셨고요. 그 위로 카키색이 은은하게 빛나는 스카프를 자연스럽게 두르셨는데 색감이 아주 세련되어 보였어요. 나이는 들었지만 젊은 세대 못지않은 자연스러운 코디가 돋보이는, 한 번쯤 뒤돌아볼만한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 눈에 가장 띈 것은 그분의 머리색이었어요. 염색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흰머리였는데 까만 선글라스와 대비되는 은색의 머리칼이 어찌나 빛나던지!! 더구나 그분의 헤어스타일이 단발이라 묘하게 머리색과 어울리며 세련됨을 돋보이게 했어요.


왜 젊은애들이 일부러 탈색을 해서 백발마녀가 되잖아요. 그분도 일부러 까만 머리색을 흰 모발 바꾼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요. 아무튼 헐렁하게 입고 얼굴에 선크림만 바르고 나간 제가 황홀하게 몇 초간 쳐다볼 정도로 매력적인 할머니셨답니다.




저는 60이 넘어 직장인이 아닌 시점부터는 염색을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자주 해왔어요. 그만큼 염색하는 걸 질색하죠.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독한 염색 약품의 냄새를 맡으며 있는 30~40분의 시간이 아주 곤혹스러워요. 게다가 흰머리가 뚫고 나오는 시간은 점점 더 빨라져서 까만 머리색으로 지내는 동안이 갈수록 짧아 맥이 빠지기도 합니다. 정말 흰머리는 잡초 같아요. 어찌 그리 빨리 자라는지, 까만 머리색과 대비돼서 또 어찌 그리 잘 보이는지...


저는 그냥 자연 그대로의 흰머리로 살았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직장인이고 여러모로 그럴 수 있는 처지는 아니라 싫어도 참고 염색을 한답니다.


영화관 앞의 그분 머리카락을 보고 부러워서 딸에게 말을 했어요.


"저분 봐봐. 염색 안 해도 너무 근사하지 않니?"

"엄마도 60 넘어서는 염색 안 할 거야. 흰머리여도 저렇게 멋질 수 있잖아"


"응.. 엄마가 자주 말해서 알아"

"근데.. 엄마, 그거 알아?"

"저렇게 흰머리를 그냥 두면 그 외 나머지를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알지?"


"......"


"저분도 머리색만 흰머리지 헤어스타일, 옷차림, 선글라스 모든 것이 다 신경 쓴 티가 나잖아"



쿵!!

뒤통수를 맞았어요.

그렇지만 딸 말이 맞더라고요.


옷과 제대로 된 스타일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흰머리는 자칫 자기 관리도 하지 않는 어정쩡한 아줌마와 할머니의 중간이 될 듯싶었어요.


머리만 염색에서 해방되는 것일 뿐, 그 외의 것들은 꾸안꾸로 절묘하게 신경 써야 하니 지금의 저처럼 편함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되려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격이겠죠.


제가 원래 평소 화장도 하지 않고 편한 복장으로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딸이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나 봅니다^^


그분 같은 자연스러운 꾸밈을 하려면 평상시 저의 스타일과 감각을 키우는 게 먼저 일 것 같았습니다. 시니어 세계에도 트렌드란 것이 있잖아요. 꼭 비싼 명품에 고가의 액세서리가 아니더라도 품격 있고 격조 있어 보이는... 돈으로 치장한 것이 아니라 만 원짜리 셔츠를 입어도 태가 나는, 태도에서 나오는 아우라 같은 거요


그건 제 안의 인격도 분명 한몫하리라 생각됩니다.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고 배려 없는 행동을 보이는 어르신들도 많으니까요.


그런 분들을 자주 만나는 장소는 지하철입니다. 유독 지하철에서 어르신들이 목청을 돋우며 본인의 정치색과 요즘 젊은것들에 대한 훈계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불특정 다수가 들을 수 있기에 더 많이 알리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듣는 중간 세대인 저조차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계셔도 타인이 불편한 행동을 하는 어르신들을 환대하기는 힘들어요. 그런 분을 볼 때는 잘 입은 옷이나 구두, 가방이 아닌 그분의 입을 보다가 고개를 외면하고 말지요. 하나도 멋져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본 두 분의 행동과 외적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지 생각해 봤습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내면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단단하고 바른 태도, 너그러운 마음, 흔들리지 않는 기준. 그게 최고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더해 기품 있고 근사한 외모도 가지고 싶습니다. 주름을 없애고 팽팽한 피부를 가지기보다 세월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센스 있는 감각과 스타일을 누려보고 싶네요.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중 누가 먼저고 중요하다고 말하기 전에 둘 다 어우러질 때 인생이 빛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한 가지만 가지려 애쓰지 말고 둘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잘 버무려보는 일도 가치 있다고 믿으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당당함이 더 빨리 올 것 같아요.



그래서 노후의 여유와 안정을 더 원합니다. 트렌디한 시니어, 그냥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품격 있는 내면과 외면 둘 다 갖고 싶은 저, 욕심만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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