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세레인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이 있다.
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때다.
오늘, 나는 딸에게 원고 건넸다.
일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글을 수정하느라 바빴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만 바빴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톡톡, 탁탁 리듬을 타며 글을 써 내려가고 싶은데
한 줄을 쓰고도 다시 지우기를 반복하니
그야말로 똥줄이 탔다.
전체적인 글은 마음에 들지 않고 또 보고 또 읽기를 수십 차례,
그래서일까
더 모르겠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러 물 한 잔도 마시고
뻣뻣하게 굳은 어깨를 스트레칭도 하고
좁은 거실을 걸어도 본다.
그래도 미스터리 하게 보이는 내 글.
어디를 어떻게 수정할지 갈팡질팡이다.
하지만 마감일이란 게 이래서 있구나를 느끼며
겨우겨우 수정을 마쳤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의 말까지 가져오는 것조차 민망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라면 원고를 적어도 두 번은 써야 한다.
한 번은 서재문을 닫고 써야 하고,
또 한 번은 문을 열어놓고 써야 한다"라고.
마침 딸이 집에 있어 첫 독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00야, 엄마 글 좀 읽어봐 줘 나는 하도 읽어서 이제 모르겠다"
"응 알았어 각 잡고 앉아서 읽어볼게"
논술로 학교에 들어간 딸에게 SOS를 보냈더니
말 시키지 말고 잠깐 나가 있으라는 말.
헐... 싸하다
"엄마~~~"
딸인데도 첫 독자라 긴장되는 나.
"어때?"
"음... 일단 글이 좀 딱딱해.... 그림이 잘 안 그려지고.....
여기는 이렇게 고치면 어때? 이 부분이 너무 어색한데, 엄마는 안 그래?... "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까지 펼쳐가며,
"나는 첫 시작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여기 봐봐 이분들 글은 시작이 너무 좋잖아.
이건 재밌어서 더 읽고 싶어지게 하네,
이 분의 글은 첫 문장이 딱 몰입하게 만들지 않아?
요건 작가의 감정이 너무 잘 보여서 나도 공감이 되고...."
작두를 탄 것처럼 내 글을 조목조목 비평하는 딸.
그래.
나도 안다.
그래서 고치고 싶은데,
이미 몇 번을 수정한 글이다.
'딸이 아니라 한 명의 독자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자!',
라고 마음먹고 글을 건넸으면서도 자괴감은 더 커지고.
굳게 먹었던 마음 위로
'엎고 다시 써볼까?'
급기야 그런 생각까지....
쓰던 글을 두고 새 탭을 켰다.
하얀 화면과 깜박이는 커서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일어나 주섬주섬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미 엉덩이로 앉아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
문을 닫았고 열기도 했다.
글을 고치는 시간이 아니라
'나에게는 없는 재능으로
왜 글을 쓴다고 했을까'하는
후회와 자괴감으로 인해
가슴에 구멍이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운동화 끈을 평소보다 더 질끈 묶었다
딴생각 안 하고 냅다 달렸다.
3월인데 내린 눈 덕분에 저 너머 산의 풍경은 이뻤다.
딸아 고맙다.
너 아니었음 또 건너뛰었을 달리기를 마쳤구나.
달리며 든 생각,
'도대체 책 한 권을 통째로 쓰는 분들은 어떻게 살지?'
'일 년에 한 권씩 출간하는 작가들은 어떤 뇌를 가진 거야?'
공저로 작은 한 꼭지를 쓰는 것도 이리 헤매는 나는
작가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또 하얀 화면과 정면 대치하는 상황.
노려보다가 눈싸움에서 내가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까만 글자를 넣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글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