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서툴렀다

by 세레인

by 세레인


같이 사는데 왜 이렇게 속도가 다를까.


토요일은 늘 마음이 바쁘다.

저녁 강의가 있는 날이면 하루가 더 촘촘해진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마음이 조급했다.


평일의 피로 때문인지 6시가 넘어서야 일어났고

몸은 생각처럼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밀리면 더 하기 싫어질 것 같아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달리고,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고,

염색까지.


점심에는 오랜만에 남편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30분이 큰 시간인데

남편에게는 아닌가 보다.


청소를 시작하면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하고 나갔다가

어김없이 20분이 지나서야 들어온다.


빠르게 움직이는 나에게

남편의 속도는 한없이 느리게 느껴진다.


결국 나는 또 재촉한다.


“빨리 좀 하자.”


그러자 남편이 말한다.


“어차피 우리 둘이 밥 먹는 건데

왜 이렇게 쫓기듯 해야 해?”


나는 다시 하루 일정을 줄줄이 꺼내놓는다.


밥 먹고, 장 보고, 반찬 만들고,

글 쓰고, 수정하고,

저녁 먹고 강의까지 들어야 한다고.


내 말을 듣던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편이 되어준다.


청소를 서둘러 마치고

내 머리를 먼저 염색해 주고,

자기는 후다닥 샤워를 한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쓰인다.


‘내가 또 몰아붙였나…’







결혼 전의 나는

뭐든지 급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 후 많이 느긋해졌다.


남편 덕이었다.


조급함 대신 여유를,

빨리빨리 대신 기다림을 배웠다.


그 덕분에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도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제 다 컸다.


나는 다시

내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예전의 조급함이

슬그머니 다시 올라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마음이 미안해졌다.


늘 묵묵히 맞춰주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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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

괜히 말을 건넸다.


“시원한 커피 사줄까?”


“집에도 커피 있는데 뭐.”


그러더니

생일 쿠폰이 있다며

근처 카페로 들어간다.


비싼 음료 대신

아메리카노 한 잔.


“당신 이거 좋아하잖아.”


따뜻한 커피를 건네는 손을 보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늘

‘나만의 속도’를 이야기해 왔다.

그게 맞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속도를 강요하고 있었다.


내 속도를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의 속도도 인정해야 하는데 말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착각하는 순간,

나는 그저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저녁은 몇 시에 먹을까?”


“당신 편한 시간에 먹으면 되지.”


늘 내 시간에 맞춰주는 사람.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제육볶음을 만들어

조금은 느긋하게 저녁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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