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는 것과 진짜 보는 것 사이

달리며 본 것들

by 세레인


주말, 달리기를 나갔다.

벚꽃 시즌을 맞아 탄천은 사람들로 붐볐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짧은 봄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이미 활기가 가득했다.

가족 단위보다는 모임으로 나온 분들이 많아 보였다.

아마 한강까지 이어진 탄천을 따라 벚꽃 여행을 떠나는 길일 것이다.

단체로 모여 스트레칭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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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볍게 몸을 풀고 달리기 시작했다.

5K가 익숙해지니 몸이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5K를 완주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이제는 달리는 사이에도 주변이 보인다.

탄천의 왜가리도 보이고, 날아가는 작은 새의 움직임도 보이고, 풍경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중년 여성 두 분이 벚꽃나무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꽃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도 자주 보였다.



예전의 나였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풍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단순히 풍경을 담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려는 마음처럼 느껴진다.

봄을 느끼기 위해 아침부터 움직이고, 누군가와 손을 잡고 걷고, 꽃을 바라보며 그 생경한 감각을 마음에 담는 일.

그건 어쩌면

자신의 일상을 정성스럽게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달리는 중 맞은편에서 단체로 걸어오는 분들이 보였다.

화창한 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꽃구경을 하며 걷고 있으니 절로 웃음이 나는 듯했다.

남자분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앞서 걷고,

여자분들은 수다에 더 집중한 채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뒤에서 천천히 따라온다.

그 풍경 속에 내가 함께 있는 것만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화사하게 핀 꽃,

경쾌하게 돌아가는 자전거 페달 소리,

봄꽃보다 더 선명한 색의 운동복,

멀리서도 들려오는 웃음소리.

그 안에서 나는 단순히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계절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알게 모르게 그 긍정의 에너지를 받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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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보던 수선화가 더 활짝 피어 있었다.

자주 보던 보라색 꽃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축 늘어진 가지에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며,

왜 다른 벚꽃과는 다른 모양으로 피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졌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를 읽으며

요 며칠 진짜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 중이다.


‘그냥 보는 법’이 아니라


‘진짜 보는 법’에 대해서.



책에서는 진짜로 보는 법을 알아야 비로소 나만의 시각을 갖게 되고, 최소한의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짜 본다는 건 무엇일까?


보이는 것을 넘어

내가 보려고 애쓰는 것일까.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시선이 아니라

자꾸 다시 바라보게 되는 마음일까.


표면적인 이해를 넘어

내면으로 스며드는 소통을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렇게 보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무언가 하나가 흔들리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


그것이 다른 것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마음 깊이 알 때까지 계속 바라본다는 것,


그렇게 자신만 알게 된 무언가를


글로 표현하기 위해 사색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이 수많은 사람 중에서


자신을 구분할 선명한 색을 입히게 된다.


사색은 지울 수 없는 당신만의 색이다"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중에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자신의 생각으로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곧바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사고하고, 사유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느낀다.



사고 (思考)는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이고,


사유 (思惟)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며


사색 (思索)는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파고들어 이치를 따져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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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생각한다’는 같은 말이지만,

그 깊이는 전혀 다르다.


어떤 대상을 꿰뚫어 볼 때까지 붙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짜로 본다는 의미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위대한 작가의 글일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치에 맞는지,

내 생각은 어떤지 비틀어 보고 다시 따져 보려 한다.


문득 지금까지의 나의 독서는 어땠는지 돌아본다.


나는 과연 제대로 ‘보고’ 있었을까.


진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즐겁다.


정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을 품고 오래 머무는 시간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값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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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보던 꽃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고,

이름이 궁금해지고,

다른 모습의 이유를 알고 싶어지는 이 순간.


어쩌면 나는 조금씩

‘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바라보고,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시선.

진짜 본다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달리는 것은

몸과 마음과 생각이

함께 깨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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