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겨울이 곧 온다.
첫 번째 겨울은 꽤나 정신없이 다가왔다. 8월에 토론토를 떠나 10월 중순에 다시 돌아왔을 때, 짐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었던 두꺼운 겨울 자켓이 그날의 기온에 딱 맞을 정도였다.
“아직 10월인데, 이게 맞아?”
몸을 한껏 움츠리며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임시 숙소에 몸을 맡기고, 새 집을 찾고, 계약을 하고, 일을 구하면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럼에도 첫 안정과 함께 찾아온 첫 겨울은 신났다. 트리도 꾸미고, 크리스마스 쿠키도 만들고, 겨울 영화를 하나씩 보며 ‘이곳에서의 나’를 만들어갔다.
이제 두 번째 겨울을 앞두고 나는 또다시 냉장고에 종이 한 장을 붙인다. 이번엔 무엇을 하며 보낼지, 어떤 마음으로 이 계절을 맞을지 고민하면서.
‘거기서 뭐가 달라?’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다르기도 하면서 똑같기도 하다. 여전히 쉬는 날엔 산책을 하고, 집에서 혼자 밥을 해 먹는 걸 좋아한다.
파스타를 제일 자주 만들고, 제일 자주 가는 곳은 집 앞 마트다. 밥을 먹을 땐 미드나 ‘나 혼자 산다’를 틀어놓고, 집안일을 할 땐 스포티파이나 팟빵을 켠다. 샤워를 할 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혼자 있을 땐 와인을 마시며 목청껏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진 건 있다. 휴가에 비키니를 입으려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그냥 입는다.
화장은 하지만 ‘예뻐 보이려는’ 화장은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한다.
브라를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도, 어깨가 예전만큼 움츠러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크게 치유된 건 ‘외모로 인한 정신적 강박’일 것이다. 이건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동시에 너무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외모가 늘 평가받는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관심이든. 집에서는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 때로는 방 안에 까지 누가 들어와서도 내가 얼마나 부어 보이는지, 살이 쪘는지 말한다. 때로는 얼굴이 홀쭉해 보인다고, 살이 빠졌냐고 '칭찬'을 건낸다. 옷을 고를 때도 ‘내가 좋아하는 옷’보다 ‘날씬해 보이는 옷’을 고른다. ‘내 몸무게’에 맞는 옷이 아니라 ‘입을 수 있는 옷’을 입는다. 한국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다.
뱃살이 있으면 배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건 실례이고, 남의 눈을 ‘더럽히는’ 행동이라 여겨진다. 노출이 많으면 추행을 당해도 네 탓이고, 수치심이 드는 일도 네 잘못이 된다.
나는 30년 넘게 너무 당연하게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1년도 안 되어 ‘그럴 필요 없는 삶’에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당연하지.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삶을 원해왔으니까.
이게 맞는 거니까.
‘맞고 틀린 게 어딨냐’고 묻는다면,
아직 인간은 달에 가지 않았다고 말하지 그러냐고,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다시 한국에 가는 게 무서울 지경이다.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5kg이 쪘다는 이유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지방 주사를 맞는 일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들려온 말들은 내 외모를 향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너무 사실처럼 들렸다.
“남이 뭐라 해도 네가 괜찮으면 괜찮은 거 아니야?”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세상엔 정신병 같은건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