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연습생

by 마늘


한 해가 저물어 갈 때면 늘 그렇듯 지나온 시간들을 꺼내 본다.

한 것 없이 또 한 해가 훅 가버린거 같아 허무하다가도, 내가 써 내려놓은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바뀐다.


종이 다이어리, 노트북에 써 놓은 일기들, 핸드폰의 달력 앱, 사진첩을 하나씩 훑어서

뭘 했는지 찾아보다 보면 꽤 많은 것들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산적이진 않아도, 누군가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아도, 나를 기쁘게 했던 일들, 나를 즐겁게 했던 순간들.
그것이면 충분한 날들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분명 내가 살아낸 하루하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을 준비하며 서로 질문을 나누었다. 받은 질문 중에 하나가 ‘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였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꽤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생각한 성공은 ‘지성’이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12년 동안 그것만 보며 달렸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성공의 자리를 ‘지위’가 대신했다. 이름 있는 직장,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자 성공은 ‘돈’이 되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많이 벌면 그게 성공이라고 여겼다.
재태크든 재태크를 빙자한 투기든 로또든 돈만 있으면 다 될거 같았다.


어쩌면 돈이 곧 ‘자유’를 의미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니 더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회사를 나올 수 있는 목표를 잡았고 나만의 인생을 살 준비를 했다.


준비는 계속 됐다. 회사 밖에서 무언가 나만의 것을 해 내는건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한텐 목표가 있으니까.


몇년 째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거세해야하는 나의 행복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계속 되뇌었다.


목표만 이루면, 몇년만 더 노력하면, 고생하면.

아직 제대로 된 내 인생은 시작 되지 않은 것 처럼 굴었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은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의 나는 무엇일까


마치 데뷔를 앞둔 연습생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내 인생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제대로 된 내 인생은 목표를 이룬 다음인 것 처럼 구는게..

맞는걸까?


그러다가 올해 느낀건, 목표를 위해 가고 있는 오늘도 막연히 기다리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표가 있든 없든, 방향이 정해져 있든 없든, 오늘 내가 살아낸 하루가 소중하다는 것.


하루를 마칠 때
“오늘도 잘 살았다”
“오늘도 꽤 괜찮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성공한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인생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하찮다고 느껴지는 지금의 순간은 진짜가 아닌 것 처럼 취급했지만.

지금 어떻든 지금의 내 삶도 진짜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의 나를 부정하지 말자.


지금의 나를 미루지 말자
그리고 오늘의 나를 온전히 즐기자.

목표로 가는 길은 방향은 이미 잡혔으니까

천천히 지금의 나도 존중해주고 즐겨주면서


그렇게 가 보자고.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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