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성공 그리고 질투

by 마늘

오랫동안 질투라는 감정은 추악하다고 생각했다. 누굴 질투한다는게 싫었다. 부정적 감정들은 인지하기도 전에 부인하거나, 마음속 깊은곳으로 넣어버리거나, 깊이 바라보기도 전에 긍정적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질투도 그런식으로 치환해 버렸다.


최근에는 인지 하려고 하는데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다. 질투라니. 너무 짜친다. 부끄럽다. 내 찌질함을 참아주기 어렵다. 좀 쿨해보이고 싶은데.



실패와 성공의 기준을 세우고 나면, 성공한 사람이 부럽기 마련이다.


워홀을 오고나서는 현지 사무직을 구하는 친구, 많은 현지인과 친구가 되는 사람, 현지 생활에 쉽게 녹아들어서 적응하는 사람들 혹은 이 중에 몇개씩 해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내가 적응이 어렵고, 주변에 친구가 없고, 한인잡을 하고 있다면 더더욱. 나의 실패는 타인의 성공에 부러움을 넘어 검은 질투로 가는 미끄럼틀이 되어준다.


심지어 이런 사람이 바로 주변에 있다면 그 질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비교하게 되어서 스스로가 비참해지고 또 질투를 하는 자체가 못나게 느껴진다.




워홀와서 사귄 친구들 중 누구는 오자마자 로컬잡을 잡았고, 애인과 친구들을 금방 사귀고 현지에 빠르게 녹아 들어 갔다. 나는 미드를 동경하면서 자라왔는데 누군가는 그 동경을 일상으로 이뤄낸것이다. 나는 와서 적응하는데도 한세월, 고작 한인잡 잡는데도 한세월, 친구만드는데도 한세월이 걸렸는데 누군가는 그걸 빠르게 해 내는것을 보고 좀 충격을 먹기도 했다.


‘그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노력을 많이 하니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얻는것이 당연하다’ 라던가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지’ 라고 생각하려고 하다가도 상대와 상관 없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속상한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라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를 부정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질투하는게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이가 나이인 지라 워홀에서 만난 친구들의 전부가 나보다 어리다) 나의 정신 수준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감정을 너무 들여다 보는 시기였고 감정이 너무 선명해서 부정할 수 없었지만 어디에서 내뱉진 못했다. 너무 스스로가 못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이런 나의 질투 감정 때문에 너무 괴로웠는데 인터넷을 하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질투한다’라는 표현 대신에 ‘동경한다’라고 한번 말해보라고.


나는 현지에 잘 녹아든 삶을 동경해.

로컬 회사에 취직한 삶을 동경해

다양한 친구들이 많은 삶을 동경해.


이렇게 하고 나니까 ‘질투 뭐야. 구려’ 이게 아니고 ‘나 저런 걸 원하는구나’ 하고 그냥 내 지향점이 조금 선명해지는거 같았다. 추악하고 감추고 싶던 감정이 몽글몽글하고 귀여워지는거 같았다. 질투가 한창 심할 땐 ‘왜 내가 아니지? 왜 내삶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 뭘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거지.. 나는 뭐가 문젤까.’ 하는 식의 스스로를 가두고 스스로를 매우치는 그러다가 무기력해 버려지는 악순환의 생각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와 나 저런 삶 동경해! 저런거 동경해! 나 저런거 원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오 내 인생에도 저런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뭐랄까. 생각이 가벼워졌다. 어떤 생각이 들더라도 좀 산뜻하게 뒤돌아서 내 인생 살게 되는 것 같다.


단어 하나가 웃기게도 사람 마음을 바꿔 놓는다.


내 인생의 많은 단어들을 바꿔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게 결국엔 내가 부정적이라고 느끼는 모든 감정들에게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이름들을 붙여주고 결국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모두 포용 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란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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