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져가는 순간들

by 마늘



한국을 다녀온지 벌써 한달 정도 됐다. 어찌나 시간이 빠른지. 근 2년을 캐나다에 있다가 한국에 한달 동안 다녀오니 집에 갔다 온게 아니라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보통 나는 장기 여행을 선호 하는 편이라 일주일에서 한달 이상의 여행을 선호하고 많은 나라를 다니는 것 보다 한군데의 도시에 자리를 잡고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데에 가는 게 너무 좋고 그곳이 익숙해지는 시점이 너무 좋다. 보통 집을 빌린다. 그리고 별달리 관광을 하진 않는다.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을 파악하고,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커피숍이나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맛집으로 추정되는 곳들을 사진을 찍어 체크해 두거나 구글 지도에서 찾아 별마크를 달아 놓는다. 맛집에 예민한 나는 평점을 확인하고 점수가 좋으면 금방 밥을 먹으러 간다. 평소에 집에서 하는 것 처럼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가서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처음엔 어색하게 두리번 거리고 메뉴도 뭘 먹을지 십분넘게 고민하던걸 이제는 척척 주문도 빨리하고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명당으로 자연스럽게 가서 자리 잡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도 어느정도 되면 지도도 볼필요 없이 걸어가면 되고 숙소에 도착하면 내 집에 온 것 마냥 편안하다.


그 낯선곳이 살짝 익숙해졌을 때의 느낌이 너무 좋다. 어차피 떠나는 날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일어나는 일이니 익숙 하더라도 설렌다. 골목골목을 다 봐서 에이 이제 여기 내 나와바리네 더 볼데 없네 하다가도 그곳을 떠나는 택시안에서 여기 앞에 이런 데도 있었어? 왜 못봤지? 다음에 올때 와봐야겠다.. 하면서 또 아쉬움이 생긴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그렇게 끝이 있다. 그러니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좀 길다. 대충 한 80년이라고 하니 참 길게만 느껴진다. 물론 평균점이니 혹 내일 죽을 수도 있고 백년 뒤 죽을 수도 있는 어마무시한 랜덤게임이니 그것도 나름 살떨리긴 하는데 이 게임에 참여한지 30년이 넘어가니 그렇게 살떨리지도 않는다. 매일이 지겹다 생각 될 뿐이다.


일상이 너무 길고 고통도 너무 길고 해야 할 일은 많다. 이 일상을 매번 순순히 즐기기가 쉽지 않다. 여행 때 처럼 해 보려고 해도 또 막상 쉽지가 않다.




지금의 이 캐나다 생활도 계속 될 수도 있지만 언제 갑자기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두달이 아니라 2년이상을 있다 보니 지겨울 때도 있다. 이제 너무 훤한 집앞 골목 너무 훤한 동료들 반복되는 일들 반복되는 슈퍼마켓.. 처음엔 신기하고 신나서 하루에 두세번씩 가던 마트도 이젠 지겨워서 장보기도 싫을때도 많다.


엊저녁엔 좋아하는 카페에서 나와서 집으로 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예뻤다. 좀처럼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색감의 느낌의 하늘과 나무느낌. 평소에 걸으면서도 무언가를 듣거나 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오랫만에 그냥 다 끄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그냥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스라이 검게 번져가는 하늘빛을, 쓸쓸하게 뻗어있는 나뭇가지를, 거기에 걸린 달을 찬찬히 보면서 어떻게든 어제와 다른 질감을 다른 공기를 느껴보려고 애쓴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이 순간의 냄새를 맡으려고 집중해 본다.


결국엔 또 끝이 있으니까.


결국엔 이것도 아쉬워지는 순간이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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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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