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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Sep 24. 2021

남미_페루_이카 : 고독한 일출을 원해


이카 




와라즈를 떠나 이카로 이동했다. 생각해보니까 이카로 갈 때는 와라즈 갈 때보다 더 오래 버스를 탔다. 

리마를 지나서 더 내려가야 했으니. 거의 밤 버스를 타서 기절해서 자면서 갔던거 같다. 





이카는 굉장히 작디 작은 마을이다. 그리고 이카가 유명한건 작은 사막이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를 가운데 두고 작게 오목히 솟아 있는 이 사막이 어찌나 귀엽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막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키던지. 이카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1. 누가 여행자의 짐은 인생의 무게라고 했던가



누가 여행자의 짐은 인생의 무게라고 했던가. 여행 시작 일주일도 안되서 몸으로 깨달은 명언이 되어 버렸다.


옷가지 등 온갖 물건이 들어있는 메인 큰 배낭을 등에맨다. 노트북, 돈 등 중요한 것이 들어있는 보조 배낭은 앞으로 맨다. 마지막으로 핸드폰과 여권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옆으로 맨다.  뒤로 22키로 앞으로 10키로 도합 30kg가 넘는 짐을 짊어졌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 주요 이동수단이 다리가 될거란 생각은 해본적도 없고, 그럴 일도 많지 않았다. 나는 비행기, 버스, 택시 등을 적절히 활용해 저 배낭을 매고 1시간 넘게 행군해야 하는 일 같은건 없었지만 짐이 어찌나 무거운지 어느 순간부터는 가방을 메고 정말 단 1미터도 걷고 싶지 않았다.



이 다음에 리마에 가서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방은 어깨로 매는 것이 아니였다. 허리로 매는 거였다. 하지만 내 가방은 허리띠가 고장 나 있었다. 배낭여행 초보는 그런 것도 모르고 좋다고 어깨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첫날부터 뭔가 이상해 풀어해치기 시작 한 짐은 두번째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다시 또 침대 위로 모든 짐을 쏟아내고 필요 없는 것을 걸러 내고 있었다. 아니 필요 한 것도 버릴 판 이였다. 종이 한 장 조차 무게로 다가와 찢어 버렸다. 짐에 질린다는 기분이 이런걸까. 내 짐에 내 숨이 막히는거 같았다. 언젠가 한국음식이 그리워지면 먹어야지 다짐했던 비상식량은 오늘 당장 해치워 없애기로 했다. 


여행 초반에 짐을 많이 버리고, 그 이후로는 꽤나 비슷하게 갔던거 같다 무서워서 뭘 사질 못했으니. 그렇다고 물욕을 버리고 싶거든 배낭여행을 떠나라는 조언은 의미가 없는 거 같다. 또 살 사람들은 사서 열심히 택배로 부치는 모습을 보았다. 다 하고싶은게 있으면 길을 찾는 법이다. 




2. 혼자라는 아이러니  



내가 하고싶었던건 사막 언덕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이였다. 뜨거운 사막을 올라가는 나의 모습, 그리고 더 뜨거운 해가 뜨는 것을 바라 보는 뜨거운 나의 뒷모습.. 혼자서 머리속으로는 꽤나  그럴듯한 로드 무비를 돌렸던거 같다.  그리고 나는 간과한 몇가지들 덕분에 사막에서의 일출을 볼 수 없었다. 


일출을 보지 못했다고 하면 늦잠을 잤냐 물어볼 수 있겠지만 다행이 나는 놀기 위해서는 잠이 없는 사람이다. 일출 훨씬전에 눈을 떳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호스텔 밖으로 나오는 부지런함까지 보였다. 그럼 뭐가 문제였냐. 동네 개들이 문제였다. 


그 동네에는 동네 개들이 참 많았다. 강아지들이 아니였다. 개였다. 대형견들이 참 많이 동네에 돌아다니고 잇었다. 어두컴컴한 새벽을 울리는 하울링, 어둠을 뚫고 보이는 듯한 날카로운 이빨들과 형형한 눈빛들. 


물론 내가 걸어가면서 더 큰소리로 그들을 쫒아내거나 혹은 그들의 미간을 부드럽게 만져주며 댕댕이로 만들수도 잇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를 무서워했다. 그리고 어둠 역시도 무서워 했다. 불빛이 있으면 잠들기 어렵다고 어둠을 찾으면서 내가 눈을 뜨고 있을 땐 어둠이 가기를 바란다. 


내 영화속에는 이렇게 까지 어두운 장면이 아니였는데.. 영화에서는 조명도 있고 그러니까.. 음.. 현실은 참 어두컴컴했다. 그렇게까지 까만 밖을 한국에선 본적이 없었다. 나는 그 어둠을 뚫고 개를 뚫고 혼자 사막으로 올라갈 자신이 영 없었다. 


호스텔 앞에서 짖는 개들과 깜깜한 배경과 낮에는 그렇게 가까울거 같았던 사막이 그렇게 감을 잡을 수 없이 멀게 느껴지면서, 나는 고민을 멍하니 하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뭔가 꽤나 실망 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대단한 모험까진 아니더라도 혼자서 일출을 보러 사막(?) 정도는 올라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 이럴때는 혼자인게 좀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올라가면 안무서웠을 텐데! 웃긴건 혼자만의 고독스러운 일출을 보고싶다는거였는데 혼자여서 무서워서 못올라간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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