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알차게 덴마크 즐기기
오덴세에서 아침 5시 29분 기차를 탔다. 이른 시간에 Quiet Area에 타니 조용했다. 1시간 40분 여를 달려 코펜하겐 중앙역에 내렸다. 10시간 남짓 코펜하겐을 즐기고, 맨체스터행 비행기를 타러 간다.
캐리어는 코펜하겐 중앙역 내 짐 보관소에 70kr를 결제하고 맡겼다. (24시간 동안 맡길 수 있으며 Small 기준, Large는 90kr) 홀가분하게 가방 하나 매고 나오니 7시 반쯤 되었다. 지난번 시내 가이드 투어 복습 겸 우선 시청 쪽으로 이동했다.
타이 항공사가 있는 건물을 봤다. 현재 온도는 14~15도 정도고 비가 오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어서 한국의 명동 거리라 할 수 있는 스트뢰에를 걸었다. 오늘 하프 마라톤한다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보였다. 도로도 일부 통제 중이었다.
건물이 고풍스러워서 들여다보니 로열 코펜하겐 매장이었다. 1775년에 개점한 이래 올해가 250주년을 맞는 해라고 한다.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양 옆 건물들 사이에서, 꿋꿋이 전통을 고수하는 외관을 보니 저력이 느껴졌다.
걷다 보니 바다 냄새가 났다. 중앙역에서 거의 3km를 걸어 Østerport 역까지 온 거였다. 더 가면 바다가 나오고, 인어공주 동상에 가까워지기에 뉘하운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다. 가는 길에 로젠부르크 성을 볼 수 있었다. 지난번에 군악대 행진 연습을 내려다봤던 연병장이 나왔다.
그런데 뉘하운에 거의 다 와 갈 무렵 갑자기 비가 내렸다.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다 퍼붓기 시작했다. 결국 덴마크 국립극장 앞 지하철 역으로 피신했다.
뉘하운은 포기하고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데니쉬 건축 센터(DAC)에 가는 걸로 계획을 변경했다. 가는 길에 덴마크 의회가 나왔다. 내가 덴마크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사실 뉘하운의 풍경이나 레고가 아니라, 넷플릭스 드라마 보르겐(Borgen)이었다. 보르겐은 덴마크 의회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한국에서 국회 하면 '여의도'로 통하는 것과 같다. 픽션이지만 최초로 '소수당 출신 여성 당대표'라는 배경을 갖고 총리가 된 비르기테(Birgitte)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다. 그녀가 진심을 담은 마무리 발언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의회에서 열리는 축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가족들과 의회에 입성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의회 건물을 나오면 왕립 도서관 정원(Garden of the royal library)이 나온다. 이곳을 가로지르면 블랙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도서관이다. 아늑하지만 고풍스러운 정원을 볼 수 있었다.
DAC에 다다렀을 때 응원하는 소리와 밴드 연주가 들렸다. 현수막에서 봤던 하프 마라톤 대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DAC 건물 앞 도로를 마라토너들이 지날 때마다 응원해주고 있었다. 한편, DAC는 코펜하겐 카드로 무료입장이 가능한 곳이다. 코펜하겐 카드로 못 봤지만 학생 할인으로 반값(30kr)에 볼 수 있었다.
전시는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 하나씩이었다. 특별 전시는 뉴욕의 거리를 찍은 건데 크게 볼 게 없었다. 상설 전시에서 코펜하겐 건축물들의 역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한편, 코펜하겐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고 균형 발전을 위해 1970년대에 만든 "Fingerplanen (다섯 손가락 계획)"이 인상적이었다. 코펜하겐 중심부는 ‘손바닥(palm)’이고, 그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다섯 개 교통축을 ‘손가락(fingers)’으로 비유한 계획이었다. 손가락에 주거·상업·산업 지역을 만들고 그 사이에는 녹지(Green wedges)를 두는 것인데 현실적인 도시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DAC에는 전시물보다 유명해 보이는 실내 미끄럼틀이 있다. 건물 높이 만한 이 미끄럼틀 옆에 썰매 역할을 하는 천이 있다. 타기 전에 이 천을 발에 끼우고 초록불이 뜨면 출발하면 된다. 초반에 가속도가 확 붙어서 살짝 스릴 있었다. 처음에 한 번 타보고 감을 잡은 뒤, 두 번째 탈 때는 동영상 촬영을 하는 여유를 부렸다.
DAC를 나오니 날이 화창해졌다. 2, 3시간가량 비가 바짝 내리고 이렇게 맑아지니 온갖 식물들이 푸릇푸릇, 싱싱하게 잘 자라는 거 같다. 마지막으로 뉘하운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걸었다. 역시나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알록달록 파스텔톤의 집들과 운하의 조화가 다시 봐도 멋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전에 퍼부었던 비바람이 믿기지 않게 맑아졌다. 그 덕에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Kongens Nytorv에서 연어 샌드위치를 먹었다. 나처럼 이곳 벤치에 앉아 광합성하며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앙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설립자 Arnold Busck의 이름을 딴 Arnold Busck(아놀드 부스크) 서점을 들렀다. 3층 대형 건물을 전부 서점으로 운영하는 곳답게, 자체 굿즈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책이 여러 버전으로 있었다.
이어서 스트뢰게(Stroget) 거리에 있는 레고스토어를 들렀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좌측에는 레고 로고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전시가 있고, 우측에는 레고로 묘사한 Amagertorv(아마게르토르브) 광장을 볼 수 있었다. 문을 열어주던 직원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너무 전문적으로 잘 찍어주어서 감동받았다. 그녀가 전체 배경이 나오는 사진과 함께 나에게 초점을 맞춘 사진까지 두 장을 찍어주었는데 둘 다 너무 완벽했다.
아쉽지 않을 만큼 충분히 코펜하겐을 즐기고, 여유롭게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 체크인하는 곳에서 레고 입간판이 반겨주었다. 레고에 진심인 나라이자, 덴마크인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하고 나니 여러 감상이 들었다. 우선 덴마크는 "콘텐츠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혼자 여행하면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반전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뿔 달린 도깨비로 묘사될 만큼 과거에는 무시무시했던 바이킹이 살았던 곳이지만, 현재는 전 세계 아이들을 매료시킨 '동화와 레고'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뉘하운의 알록달록한 파스텔 풍경을 다시 볼 날을 기대해 본다. See you, Den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