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us
힘들다. 지친다.
다른 힘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힘들고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 내 마음은 저 심해 속으로 가라앉은 것 같다.
도망치고 싶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다.
되돌아가고 싶다. 지금보다 나은 것 같았던 예전으로.
위로받고 싶다. 누군가 나를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토닥여주면 좋겠다.
내 마음을 어루만져서 이 불안과 공포를
다 떨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웃다가도 눈물이 흐르고
울다가도 불안감에 미칠 것만 같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데,
찾으려고 해도 방황하게 되는데,
정말 작은 일로 슬퍼하는 것 같아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는데,
심장에 상처가 나서 아물지 못한 것 같은데,
시간은 흘러가고 그 무엇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간이 잠시 동안만 멈췄으면 좋겠다.
1초 2초 시계가 깜빡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계 속 숫자는 하나씩 올라간다.
어쩌면 시계가 하루를 1440분으로 세지 않고
1시간이 지날 때마다 0분으로 돌아가서 세는 건
간편함이나 간결함 때문이 아닌,
”이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시간마다 나의 마음을 처음으로 돌려주기 위해.
시간은 지나도 분은 돌아온다고 이야기해 주기 위해.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알려주기 위해.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면 좋겠지만,
과연 위로받는다고 나아질 수 있을지
내가 위로받을 입장일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시계가 위로해 주는 것일까.
그럼에도 야속히 커지는 시침이 가리키는 숫자는
나를 저버리는 것일까.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돼 ‘라고
나 자신을 세뇌시킨다.
꿈에서 잠시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매일 꿈속으로 도망칠 텐데
꿈에서조차 나는 안정되지 못한다.
노력은 주관적이고 성과는 객관적이다.
나는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었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할지라도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한 게 되어버린다.
다른 사람들은 방법이 잘못되었겠지,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었겠지,
무슨 문제가 그렇게 만들었겠지라며
나 자신을 나무라지만, 아니다.
고생했어. 네가 열심히 노력한 걸 알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내 마음에 갑작스레 들어온
악마는 끝내 나가지 못하고 내 마음속에서 악마가
한 마리 두 마리 늘어갈 때면 나는 이제 더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마음을 닫지만,
약해진 나에게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조였던 손을 풀어버린다.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훔치고
눈시울이 붉어져도 뒤를 돌아버리는 나에게.
이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든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더 나은 너를 위해 지금의 네가 조금 힘들 뿐이라고.
나도 아팠다고 다 괜찮다고 이야기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달라졌을까.
말없이 손잡아 주는 안아주는 다독여주는
네가 있다면 나의 상처가 조금은 아물었을까.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를 때다.
하지만 늦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는
너무 뒤처진 후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아픔을 딛고 일어선 걸까
아니면 아픔이 없었던 걸까.
어떠한 인생을 살았던 걸까.
사람들은 성공 사례만 본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잘 된 사람들의
예시만 따라 하려 하고 자신의 손해를 줄이고 싶을 때
비로소 실패한 사람들에게 눈길을 준다.
실패한 사람들의 기준은 무엇일까 모호하지만 그렇다.
어쩌면 아픈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이 조금 달랐으면 어땠을까
함께 고민해 주고 아팠겠다 공감해 주었으면
그 사람들이 성공사례로 바뀌어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짧게 빛난 것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길게 어두운 것이라고.
세상에는 만물을 동원하더라도
더 빠르게 작동시킬 수 없는 기계가 있다.
일정 시간을 간격으로 기어가 하나씩 돌아가기
시작해 모든 기어가 돌아가려면 사람들이 예상하는
지구 종말의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한 기계이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그 기계의 첫 번째 기어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아플지도 모르고
아픔이 사라질지 확신하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라 할 수는 없다.
좀 쉬라고 고생한 너는 쉬어도 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어떤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필요가 없다고 해서
더 이상 이점이 없다고 해서
모든 물건이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소중히 간직되기도 하고
때로는 더 쓸모 있는 물건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이란 긴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너무나도 긴 마라톤에서
많은 고비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럴 때 그럼에도 직진하라 강요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잠시 경로를 이탈해도 되돌아오면 된다고
쉬어가라는 것 역시
올바르지 못한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하나 잠시 멈춰있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앞서가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의 자리에서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은
나의 위치에서 묵묵히 또 가만히 나를 기다리며
나를 생각하며 그렇게 있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의 위치가 어딘지는 상관없다.
맨 앞이더라도 맨 뒤더라도
그 중간의 이도 저도 아닌 곳이더라도 괜찮다.
사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있어 가장 앞에 있고
가장 뒤에 있으며 가장 중간에 있다.
내 세계는 내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생의 마라톤에 나 말고 다른 참여자는 없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힘들어하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나이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도 나보다 힘든 사람도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 세상에 있어 함께 소멸되는 존재이다.
나의 아픔을 누군가 공감해 주길 바라며 힘들어해도,
나에게 손 내밀어 밖으로 끌고 나가지 않고
지금 이대로 가만히 멈추어있어도,
지구의 시간은 지나가지만
나의 시계는 멈추어있다.
내가 다시 나가고 싶을 때 용기가 생길 때
희망으로 가득 찼을 때 다시 시계는 돌아갈 것이다.
너무나도 애쓰고 있는 우리니까, 그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