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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pr 26. 2023

오은영의 결혼 지옥

내가 더 잘할게~!!


<오은영의 결혼 지옥>을 어제와 오늘에 걸쳐서 7~8시간 정도 본 것 같다. <금쪽같은 내 새끼>는 물론 이보다 몇십 배를 더 봤겠지만 이 프로그램을 내리 분석하듯 시청한 것은 좀 오랜만이다.


<결혼 지옥>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심장이 쿵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의 두뇌가 했다. 제목 자체의 비유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결혼 = 지옥’, 결혼 생활이 곧 지옥과도 같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 지옥이라... 확실히 시대가 변했구나. 저렇게 방송에서 대놓고 대담하게 결혼을 지옥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만큼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가 많아고 실제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고. 그리고 이혼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전에 많은 부부가 애쓰고 있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 제목만으로도 느껴졌다. 혼 때는 달콤한 맛이었지만 살다보니 어느새 농후해진 과 육아와 황혼의 쓴 맛.


방송에 나온 부부 힘들어하면서도 계속 같은 패턴으로 서로를 속박하 있었다. 자기들이 얼기설기 묶어놓은 매듭을 풀지 못해서 풀고 매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솔루션을 받기 위해  프로그램에 나 그들에게는 남모를 간절함이 있었다. 


부부 중에 문제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들 아웅다웅 다투며 서로 끼워 맞추며 사는 거지.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정 모르겠을 때, 이렇게 문제의 상황들을 짚어주고 공감 위로도 건네주고 해결책까지도 제시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니 쪽팔림을 무릅쓰고라도 일상생활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다. 달콤함까지는 아니어도 짠맛을 집어삼키고 종국엔 싱거운 맛으로 바꾸어 돌아가게 해 주는 사람이 있것으니까. 그게 그들에겐 희망니까.

  



이 프로그램 초창기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출연하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 부모님의 관계를 출연자분들의 상황에 이입하면서 보았고 꼭 우리 부모님의 문제를 해결 받은 것처럼 속 시원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도 실상 <결혼 지옥>에 나가야 할 정도로 고구마가 목에 막힌 듯한 삶을 살아온 분들이다.

내가 20대 초였을 적에 우리 셋째 외숙모는 나에게 말했다.


“혜정아, 엄마 아빠 모시고 상담 좀 받으러 가 봐~.”


"제가요?"


"그럼 딸이 해야지, 누가 해~~."


"아빠가 꿈쩍이나 하시겠어요~? 오히려 더 큰 싸움 나면 어떡하라고요."


독불장군인 아빠를 향해 상담을 가보시라고 말을 꺼낼 용기는 나에게 장전되어 있지 않았다. 난 그냥 방패만 들고 총알이 나한테 튀지만 않도록 조심하는 수준이었는데 나보고 총대를 메라고 하시다니. 참 무심하지. 왜 엄마아빠한테 문제가 생기면 다들 나를 앞세울까.


딸이라고 부모 사이까지 계속 화해를 시켜야 하나? 나는 속으로 상당한 반발심을 키우고 있었다.


아빠는 내가 상담을 권유했다면 단번에 칼같이 거절하고 무시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집안이 떠나갈 듯 큰소리로 호통을 치겠지. 눈을 부라리고 울그락불그락 헐크같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겠지. 집안은 다시 전쟁터가 되고 결국 휴전으로 끝나겠지. 내가 해봤자 소용없는 짓이야.


엄마는 이혼을 늘 주장하고 구걸해 왔지만 아빠는 이혼은 절대 안 돼, 나가는 사람은 잡지 않되 들어오는 자유 없어,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능력이 없던 엄마는 그 말에 늘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아빠와 말싸움을 하다가 속이 뒤틀리면 언제나 "이혼해!!" 하는 말로 종지부를 찍었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돈을 벌고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가끔씩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난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엄마아빠의 관계는 벌써 이혼 문제로 치달아 있는 것을. 지긋지긋했다.


어느 날은 엄마만 모시고 서울에 있는 어느 상담 센터에 간 적이 있었다. 현재 소통이 안 되는 부모님의 상황을 설명하고 솔루션을 받았다. 그 결과는 '이혼은 답이 아니다.'였다. 엄마한테 경제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상담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엄마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열심히 돈을 벌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단순 업무를 하기도 하고 화장품 판매를 하기도 하고 연수기를 팔기도 했다. 그러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는 아파트 청소를 하기 시작해서 얼마 전까지도 일을 하셨다. (지금은 계단 내려오다 발목을 접질려 인대가 파열되어서 일을 그만두신 상태.) 그러니까 꽤 오랜 시간 끈질긴 생활력으로 돈을 좀 모으셨고 오빠나 나도 용돈을 드리니까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경제적 문제 이외에 소통의 문제가 더욱 큰 거지만) 엄마가 당신의 경제력에 활로를 느끼면서 정신과 육체의 해방까지도 작심했던 작년 11~12월, 이혼 소동으로 한 바탕 난리가 났다. 

엄마는 이번엔 결코 지지 않으리라 확신을 가졌다.


도리어 아빠의 입장은 그 사이 심기일전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노년의 삶에 이미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육체적 건강과 경제적 여유에도 자신이 없어졌다. 아무리 사이가 틀어져도 밥을 챙겨주는 엄마가 집을 나가는 건 이제 먹구름에서 국지성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이 불안한 일이 된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과 확신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마음심약해지고...      


작년 겨울, 엄마의 하소연을 들었을 때, 난 엄마 아빠 두 분께 여지없이 단호함을 보였다. 이제는 두 분 일은 스스로 해결하셔라. 자식 통해서 이야기하려 하지 마시고 두 분이 결정을 하셔라. 우리는 지켜만 보겠다. 책임은 온전히 엄마 아빠에게 있는 것이다. 이혼 결정은 두 분의 몫이다. 오빠도 이에 동의했다.      


엄마 아빠를 앞에 두고 두 분이 알아서 결정하시라고 뚝심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정황상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그간 오갔던 아빠와 엄마의 손 편지가 한몫을 했다. 엄마의 이혼 도전장은 짤막한 메모로 시작되었는데 그 메모에 아빠도 메모로 답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메모를 본 엄마도 또 메모를 쓰고 아빠도 또 메모를 쓰고. 달력을 잘라서 뒷부분에 정성껏 쓴 아빠의 글에는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사과와 다짐 등이 담겨 있었다. 몰래 놓고 가는 연애편지인 양 그렇게 두 분이 선택한 손 편지는 점점 글밥이 많지기도 했다. 엄마는 당황스러워했다. 그냥 이혼하자고 간단히 쓴 쪽지에 당연히 아빠도 알아서 해,라고 짤막한 답변을 남길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빠의 대답은 자꾸 길어져만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 방법이 지금 맞는 것인지 나에게 물었다. 또 소녀다운 질문이었다. 나는 차라리 말로 싸우다 흐지부지될 바에는 이 방식이 좋은 것 같다면서,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하며 코치를 했다. 아빠한테는 전화로 코치했으나 자세히는 안 하고 이혼 후 힘들 일에 대한 우려를 담아 경각심을 북돋았다. 아빠가 나의 조언을 들으실 분이 아닌데 맞장구를 치는 건 이미 기세가 약해진 까닭이었다. 내심 불쌍하게 느껴지면서도 상황이 호전될 것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엄마가 버스를 1시간 타고 우리 집에 왔다.


“나 참, 니네 아빠가 어제는 뭐라고 썼는지 알아? 이것 좀 봐봐~” 하면서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쪽지를 한 뭉치 꺼냈는데 그중 진짜 배꼽을 쥐게 한 단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잘할게. 연희 씨~!!”     


푸하하하하. 연희 씨? 내가 배꼽을 잡고 웃으니 엄마가


“참 나, 기가 막혀서. 살다 살다 별소릴 다 들어본다. 여태까지 이름 부른 적도 없는 사람이.”


하는데 그닥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얼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고 할까? “엄마, 이제 잘한다잖아. 진짜 잘해 줄지도 모르지. 연희 씨라고 할 정도면 보통 용기를 낸 게 아닌데. 엄마 이건 아빠가 최대한 바짝 엎드린 거라구. 이 정도면 자존심 다 버린 건데 기회를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엄마는 허!! 하면서 콧방귀만 여러 번 뀌었지만 그 이후로 결국 엄마 이혼 선언 철회하게 되었다.      




참나, 부부 싸움은 진짜 칼로 물 베기인 것인지, 평생을 그렇게 악으로 화로 싸우고 자식들을 긴장시키고 두렵게 했던 두 분은 결국 법정에 서지 않게 되었다. 이미 연세도 있으시긴 하지만 서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보듬으려고 마음을 다잡으신 것 같다. 그 이후로 한동안 결혼 지옥을 보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전보다 훨씬 화평해졌다. 내가 기도 제목을 내놓고 기도를 많이 하기도 했고 중보 기도를 많이 받기도 한 덕분에. 나와 동역자들이 기도를 빡세게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후훗!! 


예전 같으면 부모님이 연로하시면 당연지사 자식이 모셨지만 지금은 강산도 여러 번 변했다. 부모가 이혼을 한다 해도 누구 하나 나랑 살자고 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죄송하고 불효인 거지만 부부 문제는 부부 선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아무튼 입을 함봉하고 있던 아빠가 요새 자꾸 말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도 아빠의 묵묵부에 진저리 쳤던 엄마가 이제는 아빠의 주절주절 입담에 뒷걸음을 칠 기세인 듯하다. 좋은 형세라고 본다.


아무튼 그렇다. 부부간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부부는 한 집도 없을 것이다.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 대화 방식이 다르고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을 해 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왜냐!! 나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과 다른 점이 너무 많다. 특히 대화 방식과 성향, 감정선이 다르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어서 지겨운 부분도 있다. 애초에 잘 맞는 사람이었다면 이 고생은 없었을까 싶지만 그 또한 다른 함정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결혼 지옥>이라는 프로그램은 의미가 크다. 다른 부부의 모습을 보며 나 자신과 우리 부부의 모습을 객관화할 수 있고 내 심리와 관계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인간의 심리 탐구가 재미있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시간이 났을 때 이렇게 몇 시간씩을 연달아 본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학부모님들 중에도 나에게 상담을 원하는 이들이 꽤 많다. 나는 그들의 문제를 깊이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해결책도 그때그때 제시해 준다. 어떤 어머니는 상담 센터를 다녀야 할까요? 하고 질문을 하시기도 한다. 이번 주에는 어떤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5개월 간 아이가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논술쌤의 병행 상담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난 그 친구가 상담을 받았는지는 몰랐었는데 그래도 상담이 종료되었다니 참 다행스럽다.

     

요즘엔 예전 같지 않게 상담을 많이 받으러 가는 추세인 것 같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상담 센터를 가는 것이다. 아프긴 아프지만 어디가 아픈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문제의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담자들은 큰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상담대학원에 진학해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 볼까 또 고민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이 너무 많고 혹시라도 내가 도움이 될까 해서. 이미 접은 고민이었는데 몬스테라에 찢잎이 한 장 새로 피어나니 접어 두었던 고민도 다시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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