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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ug 26. 2023

우리 남편은 치킨왕


(작성일 2023. 8. 25)
어젯밤에 찍은 사진이다.

What is that?!



밤 9시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반찬거리나 요리를 사 가지 않아도 되었다. 가벼운 발걸음을 선물로 예비해 준 사람 덕분에.


내일 저녁은 치킨이야~!!


그저께 남편이 미리 예고했던 그날이었다.

남편은 요즘 평일에 8시쯤 퇴근을 하는 모양인데 이번 주 목요일엔 치킨을 해 주겠다고 했다. 반찬 준비 안 해도 된다는 무엇보다도 고마운 말씀!



반찬, 요리에 썩 재능이 없는 나는 어떤 메뉴를 고를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부터가 골치 아픈 사람이다. 세상만사 중 먹을 것이 얼마나 중하냐마는, 정성껏 만들어 주지 못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요리를 사 갖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엄마로서 와이프로서 뼛속까지 미안한 마음이 다.



이에 반해,



뭐든 하기만 하면 나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는 남편. 김치찌개든 국수든 미역국이든 고기 굽기든 일단 만들어 내연금술사다. 내가 하면 자격 박탈이요, 남편이 하면 못 먹어도 GO다. 이러니 내가 반찬이든 요리든 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우이씨. 러니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남편이 알아서 요리나 반찬 준비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나보다 직장일이 힘든 남편한테 그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



런 상황에,

날 닮아 정직한 유전자를 타고난 우리 두 아들 입술에 침도 안 묻히고 은,


역시 아빠가 하면 맛있어!!"


 허파에서 바람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푸시식.



남편은


아이, 뭔 소리야~ 엄마가 하는 게 더 맛있지~


작게 외치지만,

누구 하나 거드는 사람은 없고야 만다. 제기랄.



아무튼 그래서 우리 남편은 그 기세를 몰아 치킨에 도전하시었고, 그리하여 어제가 치킨을 세 번째로 만든 날이었다. 세 번째이니만큼 맛은 일품이었고, 나는 60 넘어서 할 일 없으면 치킨 만들어 팔도 되겠다 엄지를 추켜 세웠다.


저번 두 번은 연습용이었으므로 양이 좀 부족했고 맛도 약간 싱거웠으나 이번엔 진짜 지코바 치킨보다 맛있었다. 난 정말 흡족했다. 남편은 의기양양해서 호기롭게 아이들한테 물었다.



맛있어?

어.. 맛있긴 한데.. 조금..

왜? 질려?

어.. BHC가 입맛에는 조금 나은 것 같은..



한다.
앗, 럴수럴수 이럴 수가.

와인과 곁들여 이렇게 어먹으니 금상첨화, 너무나도 편코 맛도 좋은데 아들들 이 소중한 기회를 앗아가려 한다.



남편은 약간 풀이 죽어 "아... 질렸구나... 그래, 너넨 다음부터 BHC 치킨  먹어. 아빠가 시켜줄게!!" 한다. '앞으로 해 주나 봐라'라는 목소리가 목구멍 속에 차오르는 게 보인다.



자갸, 난 너무 맛있어.
나만 해 줘. 나만.


남편은 "알았어~~ 자기 것만 만들어 줄게." 하면서

1/4 가량 아 있는 원소주를 꺼내러 간다. 짝홀짝 몇 잔을 먹더니 어느새 다 먹고 취한 남편.



어머니를 닮아, 어머니의 음식맛을 닮아 남편은 손맛이 좋고 재료도 잘 쓸 줄 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어찌어찌하면 맛이 괜찮게 나온다. 이번 치킨도 응당 금메달따 놓은 당상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의문의 1. 작정을 하고 좋은 재료로 준비하느라 하림치킨 닭다리와 봉을 이 가게, 저 가게로 돌면서 어렵사리 사들고 와서 념 만들고 양념에 닭다리 재고 에어 프라이어에 몇십 분씩을 돌려 3세트를 만들어 줬더니 돌아오는 말이, "조금 질려.."라?



남편은 서운한 감정 치킨 묻혀 뼈까지 싹싹 다 핥아먹고 나서 산책을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 들렀다. 우유를 사려고 간 거였는데 남편이 와인도 사자고 한다. 남편은 비싼 38,000원짜리 와인에 18,000원짜리 샴페인까지 추가로 골랐다. 헉, 이렇게 비싼 걸? 우린 이렇게 비싼 와인은 안 먹어 봤는데? 편의점 계산서에 6만 원이 넘게 찍혔다. 헐, 편의점에서 6만 원어치를 사다니. 이거 리얼이야? 계산대 앞에서 흔들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내 어깨를 말아 쥐며 말했다.

 


그럼~ 우리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재료 준비부터 치킨 완성까지 수고하고 고생한 자기 자신을 애써 위로하는 남편이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다. '나 이 정도는 보상해 줘야지, 안 그래?'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자기 그 정도는  수 있지. 돈도 벌고 요즘 집안일에 치킨까지 만드느라 그렇게 (개)고생했ㅜㅜ.



고생한 걸 가족이 전부 다 알아줬으면 하는 게 우리네 속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족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쓴 시간과 정성이라면 더더욱.



요리 잘하는 게 하나의 일이 될까 봐 손도 대지 않았던 남편의 과거에 불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컸었지만 어제 그렇게 애쓰고 나서 모두에게 맛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해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니 '거봐, 이제 내 기분 알겠지?' 하는 생각보다 '고생했다. 내 남편. 내가 인정해 준다. 당신 열심히 사는 거' 하는 생각이 더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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