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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pr 12. 2023

엄마, 치매 걸리면 안 돼     

몹쓸 기억력


엄마랑 한 시간 반을 통화했다. 원래 시간씩 통화하는 경우는 많은데 그저께 오후는 엄마가 수다를 많이 떨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길게 통화하는 거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데 가끔씩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난 20분이 딱 좋은데 말이다. 그냥 할 말만 하고 상대방이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주고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는 게 좋지 않나? 왜 그렇게들 통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건지. 물론 죽이 너무 잘 맞아서 1시간이 10분처럼 흘러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예외는 늘 있는 법이다. 엄마는 예외가 아니지만.

 


아무튼 엄마랑 통화 중의 거의 마지막 화제는 무엇이었는고 하니, 뇌검사였다. 요즘 엄마가 아파트 청소하면서 어깨가 너무 많이 아파졌다고 한다. 정형외과를 가봐야 하는데 엄마가 일 끝나고 가려면 병원은 문을 닫는 시간이라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신다. 돈 드는 게 싫어 네이버 검색을 하지 않는 엄마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진료 시간을 알아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니, 통화를 하면서 엄마네 집 근처의 정형외과와 진료 시간을 알려드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보기엔 더 급한 병원이 있는데 그건 뇌병원이다. 한 5~6년 전쯤 건강 검진 결과에서 치매 ‘경도’가 나왔었다. 그때는 엄마의 기억이나 행동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고 ‘경도 인지 장애’라고 해서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치매 전 임상 단계라고 나와 있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그러고 얼마 후 엄마의 조카 (나에게는 큰외삼촌의 딸, 큰외삼촌은 내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심)가 시골에서 돌연 세상을 저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직전에 엄마와 친하게 지내시던 이웃분이 지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엄마의 인지 능력에 일시적으로 큰 문제가 생겼다. 연이은 사망 소식에 충격이 엄청 컸던 것이다. 나는 그때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모들의 말에 의하면 조카의 장례식에 가는 차 안에서 횡설수설하며 자신의 물건을 알아보지 못했고 장례식에 가서도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으며 밥을 먹은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이후 엄마를 모시고 성모병원에 가서 뇌검사를 의뢰했으나 의사 선생님은 뇌검사 말고 우울증 검사를 종용했다. 결국 우울증 약을 한 보따리 받아 들고 왔고 한 1~2년 정도는 신경 안정제에 의존하며 마음의 평안을 유지했던 것 같다. 나엄마를 더욱이 신경 쓰기 시작했다.

    


엄마의 나이 칠십 넷. 아직도 할머니라고 불리는 건 어색하다"내가 무슨 할머니야~~." 하는 귀염둥이 연희 씨인데 가면 갈수록 기억력이 발목을 잡는다고 걱정과 불안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냄비에 불 붙여 놓은 걸 깜박하는 거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모르고 찾는 건 사십 대인 나도 겪는 건망증니 요 정도는 기본이라 하겠다. 근데 청소를 하고 나서 몇 층까지 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나고 청소 용품도 어디다 두었는지 까마득해서 일하는 데서 마음을 졸이는 게 힘들다고 하는 건 좀 심각해 보인다. 어차피 이번 6월 초까지만 하고 그만둔다고는 하시지만 그만둔다는 말은 매년 하는 습관 같은 말이라 일을 그만 두든지 안 두든지 간에 중요한 건 감퇴된 기억력을 빨리 고쳐야 하는 것이다. 더 좋아지게 할 수는 없을 테고 아무래도 뇌 검사 후 처방에 따라 약을 복용하든 뇌훈련 활동을 하든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엄마는 자꾸 나중으로 미루기만 한다. 어깨 아픈 게 더 급하다며 한사코 뇌검사를 미룬다. 혹시나 치매라는 무서운 병이 걸려들까 봐 조바심을 내는 연약한 나의 엄마.



유독 치매 영화라면 난 옛날부터 그렇게 가슴이 미어질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펑펑 울면서 보았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그랬고 <스틸 앨리스>가 그랬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는 일일이 포스트잇에 메모를 해서 손예진의 눈이 닿는 곳마다 붙여 놓고 포스트잇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울던 정우성의 모습이 제일 슬펐다. 그리고 <스틸 앨리스>에서는 줄리안 무어가 노트북에다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직업은 무엇이었고,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 이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  등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미래의 자신을 위해 자기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는 장면, 그리고 진짜 치매가 많이 진행되었을 때 그 기록들을 하나씩 꺼내 보며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바라보고 괴로워하던 장면, 기록을 한 번이 아니라 보고 또 보고 여러 번 보아도 계속 까먹는 장면, 결국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지시하는 대로 다량의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으려고 하는 과정에서도 읽은 내용을 까먹고 또 까먹어서 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는 장면, 그러다 시터가 들어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 결국 약통을 떨어뜨리며 오열하는 장면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 영화를 보면서 엄마의 미래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영화 자체가, 과거의 기억이 사라져서 기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 모습이 너무 가슴을 후벼 팠다. 하지만 그건 내 미래일 수도 있고 엄마의 미래일 수도 있는 거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올지도 모를 손님인 거다.



정신이 온전하신 90대 외할머니처럼 제발 엄마 뇌도 90대까지 건강하게 지키자. 기록하자. 메모하자. 쓸데없는 데 신경 쓰거나 걱정하지 말고 늘 한 보따리만큼씩 웃자.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 수가 2030년에는 127만 명이 되고 20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고 한다지만 엄마는 그 안에 들지 말자.

이기적인 말이지만 우리 이기적으로 살자. 치매에 걸리는 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끝까지 자기 정체성을 붙들고 살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외국인들도 전 세계인들도 노인들에게 치매는 많이 찾아온다. 그래서 치매 노인분들을 위한 복지가 발달되어 있는 나라도 많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알쓸인잡》에서 치매 노인에 대해 말하다가 울먹이고 목이 메어 결국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봤다. 김영하 작가를 따라 내 얼굴도 울먹였다. 영하 작가가 말하길, 치매 환자들이 잃어버리는 건 과거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분들은 미래를 잃어버리는 거라고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되니까.



"할아버지, 누구 기다리세요?"

"나? 우리 딸 기다려요~"

"아~ 할아버님 따님 기다리시는구나. 아유 너무 추우니까 안에 들어가서 기다릴까요?"

옆에서 말을 건네고 대화를 주고받던 여인은 할아버지와 함께 버스에 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타요~ 아빠~"



엄마를 위해 큰 글자 책을 사기로 했다. 엄마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책은 뭐 하러 읽느냐고 한다. 여태까지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날 위해 단 한 권의 책을 사준 적도, 책 내용에 대해 논의해 본 적도 없다. 책을 전혀 안 좋아하는 엄마지만 뇌를 활발히 움직이게 하는 데에는 책만 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주기적으로 책을 사주고 숙제를 줄 것이다. 소리 내서 10분씩 읽으시라고. 그래야 치매 안 걸릴 거라고. 빡세게 숙제 검사를 할 것이다. 그래야



"할머니, 여기서 누구 기다리세요?"

"어? 나? 우리 딸. 우리 딸이 안 오네."

"그러세요, 할머니? 그럼 저희 집에 잠깐 들어가서 같이 기다릴까요?"

"응~ 그래~"

하면서 내 손을 붙잡고 들어갈

엄마를 마주할 일이 없을 테니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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