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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r 15. 2023

사랑받고 자랐거나, 사랑 못 받고 자랐거나

행복한 나, 불행한 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ㅡ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 부모님은 각각 어떤 분이신가. 어떤 말을 주로 듣고 자랐으며 그것은 성장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나의 현재 모습에 부모님이 끼친 영향은 과연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해 나는 생각이 많았었다.      


다른 가정은 어떤 모습, 어떤 분위기이고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는가. 부모님의 양육 방식은 자식의 삶의 태도 혹은 자존감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것이 궁금해서 내 성격이나 성향은 어떠하며 내 양육 방식은 옳은가에 대해서 책을 많이 찾아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영상이 있으면 지체하지 않고 시청했다.      


오늘도 유튜브를 보다가 심리학과 심리를 다루는 영상을 접했다.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이라는 채널이었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최명기 원장이 이런 얘길 해주었다.      



<사랑받은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는가?>     


사랑받은 사람에게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다. 자신에게 잘해 주거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자신에게 못해 주거나 불행하게 사는 사람의 경우는 그 사람이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고 치부한다. 현재의 상대방의 특징을 그가 과거에 받은 사랑의 유무로 판단한다. 그러나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드러나는 특징은 없다.


<자꾸 과거를 돌이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 현재의 자신의 불행을 과거에서 찾는 사람은 ‘사랑받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을 거야.’라고 오해하며 어떤 특징을 상정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닮아가려 노력한다. 이것은 칭송받을 일이다.


그들은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 다. 불행했던 과거를 자꾸 들추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행위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과거에서 무조건 벗어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거에 몰입하여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을 과거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자꾸 과거를 찾을 때가 문제인 것이지 과거에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이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권리이다. 과거를 들여다보면 자기 연민이 생기는데 그것으로 현재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불행을 극복해 나갈 힘이 생긴다. 과거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해도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했,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 그리고 누구도 자신을 원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확신과 긍지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어른들에겐 특징이 있는가?>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당했다든가 부모님이 가출을 했다든가 했던 경우에는 정서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항상 위험을 느끼고 불안해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도 과거에 자신이 사랑을 받았는가, 받지 못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현재의 마음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실제로 받지 못한 경우와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두 유형 다 현실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신이 분명히 사랑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쉽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현실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해도 깊이 간직된 부모님의 사랑을 토대로 금방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충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받지 못했거나,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노력해야 할까?>     


과거는 객관적일 수도 있고 주관적일 수도 있다.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과거에 사랑받지 못했다 생각 현재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만약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부모님의 기준에 맞추어 현재의 자신을 바꾸거나, 그게 어려우면 부모님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 것이다. 따라서 후자와 같이 부모님에게 받고자 하는 사랑의 욕망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과거에 받지 못한 사랑의 빈 공간은 현재 다른 상으로부터 받는 사랑충족 수 있다.      


과거에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일어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분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노와 시기, 질투, 복수심, 지나친 요구 따위를 잘 다스리게 되면 사랑받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사랑받는 사람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다. 남을 사랑해 주는 것, 남을 용서해 주는 것, 사소한 일로 화내지 않는 것, 위험이 닥치더라도 자기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것, 이런 것들이다.      


과거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부모나 과거의 사람들에 대해서 용서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수용할 필요는 있다. 그들의 한계를 수용하고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는 것이다. 과거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지만 한계를 수용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 게다가 과거와 분리된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독립적인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조금은 행복하고 조금은 불행하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 엄마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했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가도 멀어지게 되고 생각보다 더 멀어지게 되면 자책감 내지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것.


평소에 엄마나 아빠와 대화가 잘 되지는 않는다. 관심사도 하늘과 땅 차이고 사고방식도 다르다. 나는 부모에게서 나고 자랐으나 비슷하거나 통하는 구석은 별로 없다. 그래서 분명히 사랑을 받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더 뭔가 통하는 무언가가 있길 바랐다. 하지만 없었다. 생각이 통해야 사랑받는 건 아닌데 난 크면서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 같다.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했다.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의외로 감정적인 아이였는데 겉으로는 늘 싹싹하고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잘 맞추며 어른들에게도 무척 예의 바르고 상냥했기에 부모님은 나의 진정한 모습을 모를 수 있다. 그래, 모를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서운한 건 모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나의 나다움에 대해 - 물론 나 자신이 가장 관심이 많다 – 부모님은 관심이 없다. 그저 당신들의 일상과 외로움에 대해, 하는 일에 대해, 돈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리고 하나 더, 엄마는 아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아빠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공평하다.


하지만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지고지순하게, 그 처녓적의 순수함처럼 아들에 대한 강한 애착과 연민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수억 번을 들어왔던 아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엄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심지어 오빠 본인도 질려 버릴 정도 잘 알다. 오빠가 결혼을 한 이후 엄마는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그 상황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다. 그때 엄마를 우울증에서 건져 사람, 이제는 수용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걸 인지시켰던 사람은 바로 나다. 엄마의 심신안정시키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 사람이 왜 딸이어야 하는가? 같은 자식인데 나는 자식이 아닌 타인과도 같았다. 나는 그런 상황으로 나를 끌고 간 엄마를 한 편으로는 이해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의 지난 과거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과거를 들추어내서 이렇게 써야 속이 시원한 걸 보면 말이다. 부모님의 불행을 벗겨 주려고 노력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부모님의 기분을 좋게 해 드리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엄마의 편향된 연민을 이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많은 한계가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한계를 수용한다. 나의 한계를 수용한다. 나는 과거에 사랑받고 자랐지만 사랑받지 못한 부분도 있다. 사랑을 받았지만 차별도 받았고 수용한 부분도 있지만 수용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어느 누구나 완벽한 사랑을 받을 는 없다는 건 이미 알아 버렸다. 완벽한 사람, 완전한 사람은 없듯이 이 세상엔 완벽한 사랑, 완전한 사랑도 없다는 걸.


사랑을 받았든 못 받았든 상관없다. 받은 나도 나고 못 받은 나도 나니까. 과거를 들여다 볼 수는 있지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 현재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더 많은 사랑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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