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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Feb 18. 2023

엄마가 장애인이 되었다

경청하기를 생각하다


연희의 스무 살.

연희는 시골집을 떠나 가방을 만드는 공장에 운 좋게 취직을 했고 그 공장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아무 할 일 없이 무료함만 가득한 어이었다.


같은 방을 쓰던 친구도 어지간히 심심했는지 연희를 자기 무릎에 누이고는 귀를 파주겠다고 했다. 앳되고 눈코입이 야무진 연희는 뭔가 산뜻한 기분을 느끼며 그 친구의 넓적다리를 베고 모로 누웠다. 귀이개로 귀지를 파던 일은 밥 먹는 일 다다다음으로 흔한 것이었만 친구가 파주는 건 처음이었다.


친구가 자기를 위해 더러운 귀지를 파 준다는 것은 무척 친절하고 애틋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분 좋았다. 친구는 먼저 연희의 오른쪽 귀를 살살 파주었다. 간질간질하면서 살짝 기침이 났다.

“야, 움직이지 마~~.”

“응, 알았어.”

순진하고 착한 스무 살 연희는 홍홍 하고 웃으며 코로 숨을 내뿜었다.

“야, 귀를 얼마나 안 판 거야~ 귀지가 딱지가 됐네. 봐봐!!”

연희의 친구는 귀이개에 얹힌 귀지를 장난스럽게 보여주며 뭉툭한 콧등을 찡그렸다.


공장에 다닌 지 3개월 동안 유일하게 친해진 동료였기에 친구에게 민망한 마음을 들키는 것이 연희로선 대수롭지 않았다. 그저 시골집에서 나와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고 있는 자신이 대견했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다는 사실도 좋았다. 런 생각을 하고 있데 친구의 경쾌한 목소리가 연희의 등 뒤에서 들렸다.

“이제 반대쪽~!!”

연희는 몸을 돌려 친구의 오른쪽 넓적다리에 다시 모로 누웠다. 따사로운 햇빛이 창으로 들어왔다. 친구가 말했다.


“야~~ 왼쪽 귓속은 왜 이렇게 좁아~? 오른쪽보다 좁네?” “어머, 그래? 난 볼 수가 없으니.. 흐흐흥..모르지이~ 그냥 대충 해 줘. 나도 너 귀 파줄게. 나 다하면은”

“그래. 그러든지~”


둘은 별 말 없어도 서로가 타지에서 고생하고 애쓰는 걸 지켜봐 주고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어떤 행동을 해도 모나지 않게 서로 배려할 줄 알았다. 창으로 쏟아지는 햇처럼 따스함을 느꼈다. 집에서는 부모님 잔소리에 동생들 뒷바라지에 오롯이 자기 시간을 가질 수도 없었는데 이렇게 독립해서 살아보니 인생이 꿀맛 같았다.


“연희야~ 이쪽 귓구멍 좁긴 좁아도 귀지는 엄청 많다~ 

  아, 큰 거 있다. 내가 잘 빼 줄게. 가만있어봐 봐.”

 연희는 친구 말에 따라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순간,


“아!!!!!”


갑자기 연희가 눈을 찔끔했다.


“왜!! 아퍼?”

친구는 놀라 물었다.

아, 아니야. 조금 놀랐나 봐. 귓속에 살을 좀 건드렸나 봐.”

연희는 속으로 너무 아팠다. 사실 귓속이 찢어지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왔다. 친구가 애써서 여태 귀를 파줬는데 무어라고 할 수 없었던 연희는 그냥 아프다고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꾹 참았다.


"이제 그만 파도 될 것 같애~."

"너무 속까지 깊게 팠나?"

"아니야. 괜찮은 거 같애~."

귓속은 얼얼했지만 연희는 내색하지 않고 자신이 받았던 친절만큼은 되돌려 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친구의 귀를 다정하게 파 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연희는 불쌍한 우리 엄마. 연희 씨다. 

스무 살 때 친구가 귀를 파주다가 고막이 찢어졌다고 했다. 병원에는 가봤냐고 물었더니 그땐 병원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에도 늘 왼쪽 귀로는 작은 소리를 듣지 못했고 수화기도 늘 오른쪽에 갖다 대었다. 내가 깜박하고 왼쪽 귀에 대고 무슨 얘기하면 얼른 고개를 돌려 오른쪽 귀를 내 쪽으로 향하였다.



그러던 것이 10여 년 전쯤 귀에서 진물이 나오고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수술을 하게 됐는데 그 후로 더 나빠졌다. 예후를 지켜보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경과 상태도 보고 몇 개월 간격으로 진료도 받고 했어야 하는 건데 그럴 생각을 못했다. 병원에서 오라는 지시도 없었고 한창 애 키우기 바빴던 나는 엄마의 귀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한참 흐른 후 3년 전 겨울,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겨울에 찬바람을 쐬면 귀가 빠질 것처럼 아프고 귀에서 고름 같은 물질이 나왔으며 악취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지럼증까지 동반되었고 방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현기증이 나 눈을 뜨면 방이 빙글빙글 돈다고 했다. 사태가 심각했다. 밖에서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다급해진 마음 부여 안고 연희 씨를 살려야 다. 그걸 1년이 지나서야 나한테 얘기한 연희 씨.



너무 미련하도록 순진해서 아픈데도 꾹꾹 참는 것은 스무 살 때나 일흔두 살 때나 같았다. 연희 씨는 연희 씨인 것이다. 사람의 본질은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엄마는 꿋꿋하게 참기만 하느라 병을 키우고 있었다.



엄마를 챙겨야 하는데 치료의 때를 놓쳤던 건 아닌지 미안함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로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았다. 실력파 의료진으로 손꼽히는 병원이었는데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부랴부랴 지인에게  연락을 하고 목동 대학병원의 교수님을 추천받았다.



그렇게 2년 전

엄마의 귀 상태를 보신 교수님은 ‘진주 종’이 많이 커져서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하셨다. 귓속 안에 진주처럼 생긴 것이 생겼는데 그게 많이 커져서 귓속을 꽉 채우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 진주 종이라는 것이 엄마가 머리를 움직일 때 달팽이관을 살짝 건드리면 어지럼증이 동반된 거라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이 진주 종을 제거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했다. 만약 두뇌로 연결된 혈관을 건드리게 되면 두개골을 열어서 수술을 해야 하는 위험한 상태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진주 종 제거 수술도 4~5시간 걸리는 까다로운 수술이 될 거라고 했다. 개골을 여는 일까지는 가지 말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금도 사실은 너무 늦게 찾아온 거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날짜를 잡았고 다행히 몇 주 후 엄마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6시간이나 걸렸지만 감사하게도 수술은 깨끗이 잘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은 매주, 2주, 4주, 6주, 6개월 차츰 격차를 늘리며 진료를 받으러 가서 상태를 점검했다. 경과는 좋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청력 점차 떨어졌다. 그전에는 조금이나마 미미한 소리는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먹통이 된 것이다.



작년 11월,

남들이 하는 말소리를 즉각 알아듣지 못해서 소통에 불편함이 커진 엄마는 보청기를 하고 싶어 하셨다. 한번 되묻는 건 괜찮지만 두 번 세 번 묻고 또 묻는 건 민폐인 것 같다고.

몇 차례 청력 검사를 하니 수술한 왼쪽 귀는 0%, 정상인 오른쪽 귀는 청력이 60%라고 했다. 이 정도면 경증이 나올 거라는 교수님 말씀에 따라 순을 밟아 동사무소에 진단 신청을 했고, 또 몇 주가 흐른 후에는 교수님 말씀대로 진짜로 경증 장애 진단이 나왔다. 경증의 경우엔 그다지 큰 혜택은 없었지만 엄마가 하고 싶어 하시는 보청기에 대한 지원금이 50% 이상 나온다고 했다. 그리하여



3일 전 

연희 씨는 난생처음 보청기를 맞추게 되었다.



"장애인으로 판정되는 거 좀 그렇지는 않아? 장애 진단 안 받고도 보청기는 맞출 수 있는 건데.. 상관없어, 엄만?"

"뭐 어때~ 장애인이라고 어디 표시 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난 보청기가 필요한 건데~~ 장애인으로 인정돼서 지원금 받는  훨씬 더 효율적이지~. 이제 시원하게 소리 크게 들을 수 있겠다!!" 



역시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연희 씨.

연희 씨는 연희 씨이므로 장애인이든 아니든 그 아무것도 아니다. 경증 장애이고 겉으로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니 여태껏 50년을 넘게 안 들리는 귀로 살아온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경증이라도 장애인 복지 카드를 받게 된 연희 씨가 불쌍한데 연희 씨는 보청기의 90%를 환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그래, 행복하면 됐지. 이제는 60% 남은 오른쪽 귀마저 닳지 않도록 아끼면서 자.

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60%로 200%의 남의 말 주워 담으려 애쓰느라. 





엄마의 보청기를 맞추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입은 한 개고 귀가 2개인 이유는 말은 반으로 줄이고 남의 말을 2배로 듣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흘려 버렸던가. 얼마나 말하기에 힘써 왔던가.

이제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게 어떨까. 내 말을 하기 위해 듣는 게 아니라 그저그냥 들어주는 것으로 200%를 쓰는 내가 되는 건 어떨까.


이제는 더 많이 경청하기
말하기에 힘쓰기보다는 듣기를 더 즐기게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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