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김혜정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이렇게 내면세계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며 과거의 일들을 회상했다.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작은 해프닝이나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 향수 어린 추억이 그들을 성스럽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이상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도 했다. 그들의 세계와 그들의 존재가 현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은 그리움을 향해 먼 과거로 달려갔다. (중략)

이렇게 내적인 삶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전에는 예술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때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했다.

ㅡ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p,80~81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뒤를 잇는 심리학의 대가이자 의미 치료의 창시자이기도 한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오스트리아 인수가 시작되었을 때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환자 치료를 금지당하고 1944년 아우슈비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46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유대인 소녀로서 다락방의 은신처에서부터 강제 수용소에 이르기까지의 말 못 할 고통을 담아낸 《안네의 일기》처럼 《죽음의 수용소》 역시 홀로코스트의 참상과 끔찍함을 알리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아무런 죄도 없이 죗값을 치러야 했던 유대인들이 썩어빠진 불행의 늪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통렬하게 말해 주었다.


이육사의 <절정>에 나오는 시구와 같은 '서릿발 칼날진 그 끝에 서서'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프랭클과 동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초월한다. 그들은 자유와 행복을 느꼈고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했으며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초월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겪어보지 않고서는 터럭만큼도 이해할 수 없다.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어 보지 않고서는, 전쟁의 총부리가 겨누는 방향을 직접 바라본 적이 없고서는, 찬 바닥에 살을 대고 자거나 맨발로 얼어붙은 땅을 밟아보지 않고서는 어찌 우리가 함부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동료들이 눈앞에서 송장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목도해야 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그토록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그렇게 했다. 동료들의 눈을 돌려 바바리아 숲의 키 큰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게 했다. (그 숲은 비밀 군수품 제조공장을 짓는 데 동원되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그렇게 했다.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바라보라고, 서쪽에 빛나고 있는 구름과, 짙은 청색에서 핏빛으로 끊임없이 색과 모양이 변하는 구름으로 살아 숨 쉬는 하늘을 바라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가능했던 건 빅터 프랭클이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전에 함께 봉사했던 언니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언니~ 잘 지냈어?” 당연히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늦둥이를 낳아서 키우느라 힘든 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니 씩씩하게 잘 살고 있겠지 했다. 오랜만에 연락했으니 아이가 얼마나 컸고 요즘엔 얼마나 이쁜 짓을 많이 하면서 엄마를 기쁘게 하는지, 큰아들은 얼마나 컸고 요즘 사춘기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시시껄렁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리라 짐작했다. 그러나 언니의 첫마디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혜정아, 나 작년에 위암 걸려서 수술했잖아. 사실 전화하려다 말았어. 무소식이면 희소식이다 생각하게 되니까. 괜히 얘기해서 남들 힘들게 하기는 좀 그래서...” / 아!! 언니...” 말문이 막혔다.

며칠 전, 언니를 포함하여 봉사했던 사람들과 3년 만에 모임을 가졌다. 서울에서 언니도 왔다. 17킬로나 빠져서 몸과 얼굴이 홀쭉하고 코도 훨씬 높아졌지만 “언니, 그래도 얼굴 좋아 보인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라고 말했다.

"그치~ 이제 살이 좀 붙은 거야~ 괜찮아 보이지~." 언니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웃으며 화답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예전처럼 농담을 즐기고 우리를 웃게 해주는 사람이 위를 절제하고 화기관 없이 하루에 밥을 아주 적게 여섯 번 소식을 해야 하고 화장실도 자주 가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교회 봉사를 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남몰래 호칭도 언니 동생으로 바꾸고, 언니가 서울로 이사 간 후에도 안부 전화도 하고 집들이도 가고 나름 인생 친구라고 여기며 살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멀어진 사이에 나는 얼마나 무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가. 지인이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린 딸이 눈에 밟혀 마나 많은 밤을 울었을까.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기운 없는 몸으로 얼마나 많이 주저앉았을까. 이렇게 회복되는 시간까지 얼마나 큰 고통이 있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세상 편하게 지냈던 내 삶이 너무 미안해졌다. 마음이 납덩이같이 무거워졌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감수해야 할 불편함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죽음의 수용소>를 읽으면서 기도를 한다. 언니도 빅터 프랭클처럼 이겨내게 해 달라고. 마음은 이미 한번 죽음의 끝까지 가보았고 현재의 몸은 편안하지 않지만 사소한 행복과 언니 특유의 밝음으로 불행과 어둠을 저 멀리로 몰아내게 해 달라고.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분명 찾아올 것을 안다. 질병도 죽음도 언젠가는 우리 각자의 삶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을 안다. 그런 때가 오면 두려워하지 말고 초연하라고, 담대해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테지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초월할 수 을지, 사랑하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하늘을 떠도는 뭉게구름을 따라 걸으면서 진정 행복할 수 있을 자신이 없어진다. 상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감탄할 수 있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가장 힘든 건 이 힘든 시간이 과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이 되는 느낌이다. 목표를 세울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의미 치료(로고테라피)에서는 삶의 실존적 의미를 찾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 나가도록 돕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번역한 이시형 박사가 박상미 박사와 한국의미치료학회를 설립하고 의미 치료 상담자를 양성하고 있는 것도 빅터 프랭클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표를 갖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요즘 같이 삶의 목적성을 잃고 방황하거나 우울증과 자기 비관에 빠진 사람들, 몸과 마음이 아픈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의미 치료가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언니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치지 말고 현재의 고통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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