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 셋과 살고 있다. 첫째 남자와는 18년 차, 둘째 남자와는 16년 차, 셋째 남자와는 12년 차씩이나 되었다. 첫째 남자와 훨씬 오래 산 줄 알았는데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둘째 남자와 2년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참 안타깝게도 같이 살아온 시간이 서로를 잘 이해하는 정도와 비례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친구보다도 고등학교 친구가 날 더 잘 알고 나를 낳아준 부모님보다도 오히려 내 친구가 나를 더 이해해 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을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해도 그 사이에 진실성이 결여되었다면 진정으로 친한 사이가 아닌 것이다.
우리 가족 안에서도 그렇다. 우리 네 식구 중에 나와 가장 짧은 시간을 살아온 사람은 둘째 아들인데 나는 둘째 아들과 가장 친하다.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되고 내가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 진실한 위로를 받게 된다. 그 아이는 이제 열두 살이 되었는데 말이다. 내가 초딩 수준인 건지, 그 아이가 애늙은이인지 모르겠다. 그 아이의 이름은 민혁이다.
민혁이와 나는 내 차로 이동하는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10~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간혹 진지한 대화들이 오간다. 민혁이는 그 나이 아이들 같지 않게 사색을 즐기는 것 같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싱잉 랩을 들려주다가 불현듯 묻는다.
“엄마, 엄마는 차라리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어?”
아파트 출입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들어가는데 ‘사느냐 죽느냐’하는 진지하고도 갑작스런 질문에 두뇌 회로에선 이중삼중 추돌 사고로 길이 막혔다.
“엄마는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죽느니 차라리 살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냐고~.”
“아아~~!! 엄마가 잘못 알아들었나 보네. 아, 예전에 한 번 비슷한 생각이 든 적이 있긴 있어.”
“어! 진짜? 언제~?”
“어~~ 예전에~.”
보통 때와 달리 이 대화는 여기서 끝을 맺고 말았다. 눈치 빠른 민혁이가 엄마의 아픈 과거를 들추지 않으려고 일부러 다시 묻지 않은 것인지, 아님 다른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그 노래까지만 듣고 가자며 노래에 진심이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세한 내막을 들려주지 못한 나로서도 그냥 어물쩍 넘어가는 게 차라리 나았다.
진짜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까지 생각한 건 아니지만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제발 멀리 가서 혼자 살고 싶고 날 에워싸고 있는 환경을 죄다 던져 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중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가끔씩 떠오르는 옛 기억이 소환되었다. 큰아들이 초등 2학년이었을 때 내 정서는 '우울감' 80%였다. 몸은 하나였지만 몸을 넷 정도로 나눠서 해야 할 일들이 꾸역꾸역 있었고 정신은 말짱해 보였지만 실은 거의 탈출한 상태였다. 어떤 힘으로 살아갔는지 지금은 느껴지지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다. 1년 정도가 지나 탈출했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내가 우울했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디 멀리 도망가서 조용히 혼자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을.
아이가 유년기를 지날 때까지 그리 힘든 일은 없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연습을 많이 해 왔고 연습을 하다 보니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걱정이나 불안, 부정적 심리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런데 큰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터는 잠재된 걱정과 불안이 태풍이 몰아치듯 나를 덮쳐 왔다. 내 모든 시선은 아이의 행동과 심리 상태에 사로잡혀 있었고 아이가 혹시라도 속상하고 불안해할까 봐 미리부터 내가 겁을 집어먹었다. 그냥 내가 큰아이 대신 살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들을 낳고 그때까지 독박 육아를 해 왔던 터라 아이의 행동 발달과 친구 관계(사회성), 학습의 결과물 등 아이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내 탓, 잘 돼도 내 덕이었다. 내가 아이를 저울질하고 그 결과도 내가 떠안았다. 그렇게 생각한 것들은 강박이 되고 내 마음을 짓눌렀다. 아이가 그 시기에 꼭 해야 할 것을 못 할까 봐, 결국 내 탓이 될까 봐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니 아이를 키우는 것이 벅차기 시작했고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겼다. 그걸 견디지 못하고 내 마음에 주저앉았던 게 그 힘든 1년이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냐고? 난해한 질문이었다. 이 말은 죽는 것만큼 사는 것도 어렵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죽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듯 사는 일에도 큰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다. 사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든데 그래도 살기를 택하는 것은 간절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해서라도 영혼의 자유를 얻고 싶다는 자의식의 반증인 것이다.
그 자의식 안에는 환경을 바꿀 능력이 부족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고통이 존재한다. 자신의 능력이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도망가고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 능력이 모자라는 것이 너무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서 그냥 쥐 죽은 듯이 살고 싶었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 오히려 자유를 만끽할 것 같았다. 내 자의식을 정면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뒤 어디쯤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미래가 불분명한 데다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니 어두컴컴한 내면으로 빠져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내가 그 어둠의 내면에서 빠져나온 건 내 깊은 우울감을 겉으로 표현한 이후였다. 속으로 아무리 혼자 발버둥 쳐도 계속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 같던 기분을 밖으로 말로써 글로써 발랑 까 드러내 보이니 그 순간은 환멸감이 들었지만 수렁에서 건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렁에 빠져 축 늘어져 있던 나를 끌어당겨 힘껏 건져내 준 게 다름 아닌 나였지만 오히려 남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더 큰 해방감이 느껴졌다. 혼자의 힘으로 해내고 버티리라고 내 책임이라고 늘 시인했지만 밖으로 끄집어 내야만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작은아들에게 그 질문은 왜 한 거냐고 물었다.
"헉, 엄마 못 들었어? 내가 처음에 들려줬던 노래가 그 내용이잖아~ 제목도 그건데~!!"
아, 그랬구나. 몰랐다. 아들만큼 진정으로 듣지를 못해서.
다시 노래를 듣고 가사를 새겨 보았다.
죽음은 비겁하게 삶에서 도망치는 거잖아. 근데 너는 나는 도망치지 않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잖아. 그럼 우린 대단한 거 아닌가?
미래의 너나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나 내가 받고 있는 고통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 거잖아. 그럼에도 지금 버티고 있잖아.